<기차 소리> / 심재휘/ 《현대시학》2005년 6월호
기차 소리
잠을 자려고 눈을 감으면
먼 곳에서 강을 건너는 기차 소리
밤의 들풀을 사납게 흔들며
마을의 낮은 지붕 위를
으르렁거리며 달려왔을 날들의 소리
오무린 자귀나무 잎사귀 잎사귀에서,
제 그림자를 버리고 골목 끝으로 사라져가던
슬픈 뒷모습에서도,
슬쩍 슬쩍 기우는 보름달처럼
가늘게 새어나오던 기차 소리
세상의 모든 기차가 끊어진 시간에
먼 곳에서 강을 건너는
저, 기차소리
희미한 그 소리 잃어버리고 잠들까봐 전전긍긍하는 밤,
기차는 긴 터널을 나와 난데없이 나타난 바다 속으로
폭설을 헤치며 달려 깊고 어두운 숲 속으로
오늘도 자꾸만 멀어지는데
[감상]
기차가 레일을 힘차게 구르며 달리는 소리, 기적 소리가 아니더라도 <기차>하면 왠지 풋풋한 여행의 아련함이 느껴집니다. 이 시는 이런 청각적 이미지를 통해 잔잔한 울림을 주는군요. 이 시의 기차 소리는 답답하게 막혀 있는 현실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그 공간을 넓혀갑니다. 아주 큰 <밤의 들풀을 사납게 흔>드는 소리에서, 아주 작은 <가늘게 새어나오던> 소리에 이르기까지 청각의 완급조절도 빼어납니다. 사실 이 시에서 화자는 기차라는 <주체>를 듣는 것이 아니라, 기차가 내는 소리라는 <객체>를 듣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가 <기차>보다 더 아련한 연상의 힘을 갖는 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