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목도리 - 박성우

2006.03.23 14:55

윤성택 조회 수:1894 추천:243

<목도리> / 박성우/ 《다층》 2006년 봄호


  목도리

  뜨개질 목도리를 하고 가만히 앉아있으면 왠지 애인이 등 뒤
에서 내 목을 감아 올 것만 같다 생각이 깊어지면, 애인은 어느
새 내 등을 안고 있다  가늘고 긴 팔을 뻗어 내 목을 감고는 얼
굴을 비벼온다 사랑해,  가늘고 낮은 목소리로 귓불에  입김을
불어 넣어온다  그러면 나는 그녀가 졸린 눈을 비비며  뜨개질
했을 밤들을 생각한다 일터에서 몰래 뜨다가 걸려 혼쭐이 났다
는 말을  떠올리며  뭐 하러 그렇게까지 해  그냥 하나 사면 될
걸가지구 라고 나는 혼잣말을 한다 그러다가는 내 목에 감겨있
는 목도리는  헤어진 그녀가 내게 마지막으로 선물한 것이라는
것에서 생각을 멈춘다 애인도 손을 풀고는 사라진다            



[감상]
잔잔하면서도 애틋함이 밀려오는 시입니다. 마지막 <애인도 손을 풀고는 사라진다>에 절절함이 더해오는데, <생각>이라는 관념적 형상이 재생되는 과정에 우리의 생각도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목도리가 바람에 나부껴 풀려지듯, 한 사람의 인연이 쓸쓸하게 사라지는 느낌. 저잣거리에는 지금 똑똑한 시가 넘쳐나고 있는데 이렇게 깜빡 깜빡 가끔 멍해지는 시도 있구나 싶어서, 가슴이 따뜻해져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아직 <꽃 피는 봄>이 있습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891 모니터 - 김태형 2006.06.26 1563 237
890 내리막길의 푸른 습기 - 이승원 2006.05.12 1563 219
889 잠들기 전에 눈물이 - 강인한 [3] 2004.03.24 1563 217
888 그녀의 꽃밭 - 유미애 2005.03.11 1562 202
887 질 나쁜 연애 - 문혜진 2004.04.30 1562 177
886 쓸쓸한 중심 - 이화은 [2] 2004.12.16 1560 179
885 후문 - 김병호 2006.06.01 1559 259
884 거리에서 - 박정대 2001.09.24 1558 196
883 소주 - 최영철 2001.08.06 1556 240
882 즐거운 삭제 - 이신 [1] 2005.05.24 1555 206
881 섬 - 최금진 2002.09.30 1554 219
880 꽃에 대한 기억 - 진명주 2007.05.23 1553 163
879 십자로 - 이동호 2005.10.11 1547 222
878 저녁 빛에 마음 베인다 - 이기철 [1] 2007.07.06 1545 148
877 흔적 1 - 황상순 [7] 2004.11.27 1544 207
876 달팽이 - 전다형 [1] 2004.11.16 1544 172
875 서른 부근 - 이은림 2001.05.24 1543 269
874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 - 손택수 2008.03.04 1542 136
873 나의 처음 - 윤의섭 2005.01.04 1542 205
872 木도장 - 손택수 2001.06.01 1540 3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