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도리> / 박성우/ 《다층》 2006년 봄호
목도리
뜨개질 목도리를 하고 가만히 앉아있으면 왠지 애인이 등 뒤
에서 내 목을 감아 올 것만 같다 생각이 깊어지면, 애인은 어느
새 내 등을 안고 있다 가늘고 긴 팔을 뻗어 내 목을 감고는 얼
굴을 비벼온다 사랑해, 가늘고 낮은 목소리로 귓불에 입김을
불어 넣어온다 그러면 나는 그녀가 졸린 눈을 비비며 뜨개질
했을 밤들을 생각한다 일터에서 몰래 뜨다가 걸려 혼쭐이 났다
는 말을 떠올리며 뭐 하러 그렇게까지 해 그냥 하나 사면 될
걸가지구 라고 나는 혼잣말을 한다 그러다가는 내 목에 감겨있
는 목도리는 헤어진 그녀가 내게 마지막으로 선물한 것이라는
것에서 생각을 멈춘다 애인도 손을 풀고는 사라진다
[감상]
잔잔하면서도 애틋함이 밀려오는 시입니다. 마지막 <애인도 손을 풀고는 사라진다>에 절절함이 더해오는데, <생각>이라는 관념적 형상이 재생되는 과정에 우리의 생각도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목도리가 바람에 나부껴 풀려지듯, 한 사람의 인연이 쓸쓸하게 사라지는 느낌. 저잣거리에는 지금 똑똑한 시가 넘쳐나고 있는데 이렇게 깜빡 깜빡 가끔 멍해지는 시도 있구나 싶어서, 가슴이 따뜻해져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아직 <꽃 피는 봄>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