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 임강빈 (1956년《현대문학》으로 등단) / 《현대시학》 2007년 5월호
그림자
모두 서쪽으로 향했다
사람들의 그림자는
유독 살이 빠져서 길다
얼마나 긴 시간을
터벅터벅
여기까지 걸어왔을까
그림자가 긴 것은
죄도 그만큼 길어졌다는 것
그걸 지우느라 애먹었다
접경에 왔다
점점 어둑어둑해진다
그림자가 아직은 희미하다
[감상]
해가 뜨고 지는 것, 찬란한 청춘 같은 대낮과 어스름의 노후가 연상됩니다. 늘 태양의 뒷면에 드리워지는 <그림자>의 의미는 일생을 반추하게끔 합니다. 앙상하게 마른 노인분의 모습이 <유독 살이 빠져서 길다>로, 살면서 겪었던 수많은 업(業)이 <죄>와 그것을 지우는 일로 직관화한 표현도 눈길이 갑니다. 때가 되면 태양은 저녁놀 너머로 사라지겠지요. 또 그렇게 한 사람의 생이 저무는 까닭입니다. 어둑어둑해진 현실 앞에서 삶에 대한 성찰과 어둠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애잔한 울림이 우러납니다.
그림자 없는 피리소리가 들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