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무」 / 이기선 ( 2003년『시와반시』로 등단)
겨울나무
병이 나을 것 같지 않아 편지를 씁니다
맞바람의 뒤끝은 맵기도 하네요
여긴 한 번 스쳐간 사랑이 다시 찾아오는 법이 없는 곳이랍니다
분명히 눈이 내렸었는데 지금 보니 서 있는 자리가 젖어 있습니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진실이 이렇게 발목을 적시는 날들 한가운데
뿌리를 내려야 할 것 같습니다
까닭을 알 수 없는 기쁨 때문에 날이 밝기도 전에
잠에서 깨어나곤 합니다
어제와 다른 자리가 아파오는 것도 위로가 되는군요
요즘도 쪽문은 열어둔 채 지내고 있습니다
끝까지 꾸지 않은 꿈이 남아 있다고 그 말이 하고 싶었습니다.
[감상]
강원도 화천 어디쯤 가다가 겨울이 그립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쩌면 10년 후쯤 지구 온난화로 이 한반도에서 겨울이 사라져 그야말로 ‘그리운 겨울’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 말입니다. 이런저런 연유로 오랫동안 글을 쓰지도 읽지도 못해 청춘의 화인(火印) 같았던 열망에게 미안해지는 날입니다. 이 시를 읽다보면 이마에 짚어지는 서늘한 열기와 새벽 공기, 쓸쓸하게 추스르는 의지 같은 것이 전해집니다. 단지 아픈 것만이 병은 아닐 것입니다. 꿈을 잊은 채, 살아내는 것에만 급급한 무료하고 반복적인 지금의 일상이 오히려 ‘병’일지도 모릅니다. 최근 문학에 대한 심경이 이 시와 같습니다. ‘요즘도 쪽문은 열어둔 채 지내고 있습니다/ 끝까지 꾸지 않은 꿈이 남아 있다고 그 말이 하고 싶었습니다.’
좋은 시, 다시 보니 반갑네요!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며 기다렸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