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겨울나무 - 이기선

2008.09.11 14:51

윤성택 조회 수:1958 추천:100

「겨울나무」 / 이기선 ( 2003년『시와반시』로 등단)


        겨울나무

        병이 나을 것 같지 않아 편지를 씁니다
        맞바람의 뒤끝은 맵기도 하네요
        여긴 한 번 스쳐간 사랑이 다시 찾아오는 법이 없는 곳이랍니다
        분명히 눈이 내렸었는데 지금 보니 서 있는 자리가 젖어 있습니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진실이 이렇게 발목을 적시는 날들 한가운데
        뿌리를 내려야 할 것 같습니다
        까닭을 알 수 없는 기쁨 때문에 날이 밝기도 전에
        잠에서 깨어나곤 합니다
        어제와 다른 자리가 아파오는 것도 위로가 되는군요
        요즘도 쪽문은 열어둔 채 지내고 있습니다
        끝까지 꾸지 않은 꿈이 남아 있다고 그 말이 하고 싶었습니다.


[감상]
강원도 화천 어디쯤 가다가 겨울이 그립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쩌면 10년 후쯤 지구 온난화로 이 한반도에서 겨울이 사라져 그야말로 ‘그리운 겨울’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 말입니다. 이런저런 연유로 오랫동안 글을 쓰지도 읽지도 못해 청춘의 화인(火印) 같았던 열망에게 미안해지는 날입니다. 이 시를 읽다보면 이마에 짚어지는 서늘한 열기와 새벽 공기, 쓸쓸하게 추스르는 의지 같은 것이 전해집니다. 단지 아픈 것만이 병은 아닐 것입니다. 꿈을 잊은 채, 살아내는 것에만 급급한 무료하고 반복적인 지금의 일상이 오히려 ‘병’일지도 모릅니다. 최근 문학에 대한 심경이 이 시와 같습니다. ‘요즘도 쪽문은 열어둔 채 지내고 있습니다/ 끝까지 꾸지 않은 꿈이 남아 있다고 그 말이 하고 싶었습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091 강 건너 불빛 - 이덕규 2009.03.02 1304 101
1090 꽃눈이 번져 - 고영민 2009.02.28 1441 99
1089 봄 - 고경숙 2009.02.17 1908 94
1088 기록들 - 윤영림 2009.02.16 1297 114
1087 풀잎처럼 - 박완호 2009.02.14 1458 101
1086 병(病)에 대하여 - 여태천 2009.02.13 1350 94
1085 폭주족의 고백 - 장승진 [1] 2009.02.12 1202 111
1084 꽃 피는 시간 - 정끝별 2009.02.10 1717 97
1083 빗방울 꽃 - 문신 2009.02.09 1345 108
1082 꽃*천상의 악기*표범 - 전봉건 2009.01.21 1370 124
1081 2009신춘문예 당선작 모음 2009.01.10 2083 126
1080 공중의 시간 - 유희경 2008.12.16 1702 145
1079 별이 빛나는 밤에 - 장만호 2008.11.26 2024 128
1078 인용 - 심재휘 2008.11.10 1721 131
1077 슬픈 빙하의 시대 2 - 허 연 [1] 2008.11.05 1683 127
1076 밤의 연약한 재료들 - 이장욱 2008.11.03 1560 115
1075 가슴 에이는 날이 있다 - 백미아 2008.10.17 2292 123
1074 검은 방 - 박장호 2008.10.15 1449 116
1073 뢴트겐의 정원 - 권오영 [1] 2008.09.16 1392 103
» 겨울나무 - 이기선 [1] 2008.09.11 1958 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