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 역시 제일 두려운 것이 내 시에 대한 소통의 영역이었거든. 나의 고민과 열정이 단번에 발가벗겨지는 것도 싫고, 모호하기 이를 데 없어 소통의 코드마저 자의식에 심어두는 것도 싫고, 그렇다고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한 시도 싫고…. 분명 시는 활자로 입혀진 고도의 영적운동인 셈인데, 나는 얼마큼의 고통의 무게를 들어낼 수 있나…. 중요한 것은 우리의 진지한 시에 대한 태도가 스스로를 만들어가는 것이고, 언젠가는 고통이 우리에게 울림이 되는 소중한 경험이 될 거란 거야. 개그콘서트처럼 삼초 안에 웃겨 줄 수 있는 것이 詩는 아니잖니. 시는 바야흐로 과정이지 조급한 결론은 아닐 거야.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모색 중인 거고, 고통과 반성과 성찰이 한데 어우러져 진정성에 향해 가는 걸 거야. 이렇게 멀티미디어가 발달된 시대에 청춘을 수도승처럼 활자에 매달린다는 것, 쉽지 않은 결정이고 눈물겨운 형벌이야. 온 인생을 닦아낸다 해도 시에서만큼은 득도의 것은 없을 테니까. 펜 하나로만, 자음 14개와 모음 10개로만 그려내는 이 세상이 희망스럽다는 걸, 또 쓰고 또 쓰며 살아내자꾸나. 그것이 먼먼 과거에서부터 이월되어온 소망이고 운명이라면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