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에 갔더니 벌레 한마리가 뒤집어져 버둥대고 있었다.
살기에는 너무 큰 먼가 상처를 입은 것 같아서
그 버둥대고 있는 모습이 너무 고통스러워 보여서
안락사를 시켜주고 왔다.
안락사...
참 쉽게들 그렇게 얘기한다.
집에 키우는 강아지가 무슨 병에 걸렸는데, 더이상 살 가망이 없다고 한다면
다들 쉽게 "그럴때는 말이쥐~"하며 안락사 얘기를 꺼낸다.
그렇지만 막상 그 강아지의 주인되는 사람은
고통스러워하며 힘들어하는 강아지에게 일말의 희망이라는 걸 걸게 된다.
'아냐... 무슨 방법이 있을꺼야... 기적이라는 것도 있잖아...'
어쩌면 안락사라는 거,
애정이 없고, 관심과 의미가 없는 대상에게는 참 쉽게 적용될 수 있는 거지만,
아직 내 맘의 큰 자리를 잡고있는 대상에게는 감히 적용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싶다.
마치... 내가 벌레를 안락사시킬 수 있었듯이...
그렇다면...
지금 내가 내 맘속에서 안락사를 시키려는 몇몇가지의 꺼리들은
이제 더이상 아무런 의미와 관심이 없는 것들일까?
그래서, 그로인해 고통과 상처를 받느니 차라리 안락사시키기로 결정할 수 있었던걸까?
아침에 벌레 한마리 안락사 시키고 들어와 드는 이런저런 또다른 안락사 꺼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