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새로 산 청바지

2025.04.30 14:33

윤성택 조회 수:21

.

날이 더워져 덜 답답했으면 하고, 디자인도 그럴싸해 구매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도착한 청바지. 입어보니 마음에 든다고 해서 몸에 맞는 것은 아니구나. 치수가 맞을 거라 짐작했는데, 몸을 청바지 치수에 맞춰야 했다. 지금껏 입어 온 청바지는 내 몸에 겨워 하나같이 늘어난 것이라니. 반품을 하고 한 치수 큰 걸로 바꿀까 싶다가도 그 갑갑함이 몸에게 건네는 메시지 같아, 허리에 손이 간다.

 

한때, 내게 맞지 않는 눈치를 입고 자신감도 빠져서 희멀건 바랜 채 지낸 적 있다. 그때 알았다. 월급쟁이란 청바지 밑단에 삐져나온 실밥처럼 조직에서 사소해질 수 있다는 것을. 그 무렵부터였던 것 같다. 오로지 청바지, 그것이 나에게 맞는 차림이었고 나를 인정하는 소탈한 방식이었다. 그 뒤로는 양복바지를 입어본 적이 없다.

 

이웃 나라에서는 청바지가 제국주의 상징이라 입지 못하게 한다던데, 내 몸은 치수를 침략 중인가. 이런 생각이 조여오는 벨트를 만지작거리게 한다. 그러고 보니 청바지를 입고 별별 일을 다 했던 것 같다. 가장 먼 일은 사다리 타고 지붕에 올라 휘청거린 것이었고, 가장 가까운 일은 못에 걸려 천이 찢기고 쓸린 살갗이었다.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사람을 보면 왠지 모르게 나도 허리춤을 추스르게 된다. 핏이란 결국, 청바지를 언제 샀느냐보다 그 사이 어떻게 살았느냐에 달린 것. 꽉 조여오는 걸 몸이 버티던가 아니면 몸이 줄여가던가. 이 봄날 지퍼를 쓱쓱쓱, 올려보는 것이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159 신발만 담아 주세요 2025.05.07 9
» 새로 산 청바지 2025.04.30 21
157 봄과 여름 사이 2025.04.23 28
156 하늘이 파래서 2025.04.16 25
155 마음에도 관세가 있을까 2025.04.09 31
154 지브리풍으로 산다는 것 2025.04.02 34
153 산불 2025.03.26 25
152 2025.03.19 29
151 전철에서 졸다 눈을 떴을 때 2025.03.12 35
150 삶은 듦인가 2025.03.05 34
149 머리를 길러 뒤로 묶고 나서부터 2025.02.19 44
148 내리는 눈에 눈이 호강하여 오후가 누려진다 2025.02.12 38
147 패딩을 입고 미끄러지기 쉬운 2월 2025.02.06 38
146 일주일 사이 제법 선선하여 2024.09.26 111
145 신호등에 걸려 서 있다 보면 2024.03.13 167
144 글이 읽으러 기회를 만난다 2024.02.22 75
143 인생이 통속으로 취했거늘 2024.02.01 100
142 영화로운 2024.01.26 74
141 보랏지다 2023.12.28 81
140 냉장고 2023.09.07 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