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새로 산 청바지

2025.04.30 14:33

윤성택 조회 수:382

.

날이 더워져 덜 답답했으면 하고, 디자인도 그럴싸해 구매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도착한 청바지. 입어보니 마음에 든다고 해서 몸에 맞는 것은 아니구나. 치수가 맞을 거라 짐작했는데, 몸을 청바지 치수에 맞춰야 했다. 지금껏 입어 온 청바지는 내 몸에 겨워 하나같이 늘어난 것이라니. 반품을 하고 한 치수 큰 걸로 바꿀까 싶다가도 그 갑갑함이 몸에게 건네는 메시지 같아, 허리에 손이 간다.

 

한때, 내게 맞지 않는 눈치를 입고 자신감도 빠져서 희멀건 바랜 채 지낸 적 있다. 그때 알았다. 월급쟁이란 청바지 밑단에 삐져나온 실밥처럼 조직에서 사소해질 수 있다는 것을. 그 무렵부터였던 것 같다. 오로지 청바지, 그것이 나에게 맞는 차림이었고 나를 인정하는 소탈한 방식이었다. 그 뒤로는 양복바지를 입어본 적이 없다.

 

이웃 나라에서는 청바지가 제국주의 상징이라 입지 못하게 한다던데, 내 몸은 치수를 침략 중인가. 이런 생각이 조여오는 벨트를 만지작거리게 한다. 그러고 보니 청바지를 입고 별별 일을 다 했던 것 같다. 가장 먼 일은 사다리 타고 지붕에 올라 휘청거린 것이었고, 가장 가까운 일은 못에 걸려 천이 찢기고 쓸린 살갗이었다.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사람을 보면 왠지 모르게 나도 허리춤을 추스르게 된다. 핏이란 결국, 청바지를 언제 샀느냐보다 그 사이 어떻게 살았느냐에 달린 것. 꽉 조여오는 걸 몸이 버티던가 아니면 몸이 줄여가던가. 이 봄날 지퍼를 쓱쓱쓱, 올려보는 것이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170 핑, secret 2025.07.30 102
169 텀블러 2025.07.23 102
168 젖은 우산은 세 번 털어야 한다 2025.07.16 126
167 상상 2025.07.09 124
166 무더워서 무던하다 2025.07.02 108
165 시간차 2025.06.25 124
164 마음의 안쪽은 어디로 통하는가 2025.06.18 126
163 그늘 2025.06.11 125
162 어떻게든 그날은 온다 2025.05.28 390
161 흥얼거린다는 건 2025.05.21 386
160 단추 2025.05.14 395
159 신발만 담아 주세요 2025.05.07 396
» 새로 산 청바지 2025.04.30 382
157 봄과 여름 사이 2025.04.23 376
156 하늘이 파래서 2025.04.16 383
155 마음에도 관세가 있을까 2025.04.09 399
154 지브리풍으로 산다는 것 2025.04.02 378
153 산불 2025.03.26 381
152 2025.03.19 380
151 전철에서 졸다 눈을 떴을 때 2025.03.12 3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