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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패딩을 입고 굼뜨게 걸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안다. 아직 눈이 녹지 않은 그늘과 반들반들한 보도블록이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2월의 길바닥은 여전히 얼어붙어 있고, 낮 동안 녹았던 눈이 밤새 다시 얼어붙어 종종걸음을 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저마다 두툼한 옷을 걸치고, 주머니 속 손을 꼭 쥔 채 비틀거린다.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해, 넘어지지 않기 위해. 그러나 2월은 그런 계절이다. 넘어질 것을 알면서도 계속 걷게 되는.

 

비탈길에서 아차, 신발이 미끄러지고, 다시 헛디뎌 두 다리 사이가 주욱 벌어진다. 옆으로 나동그라지며 손끝이 허공을 휘젓는다. 그러나 다행히도 패딩이 있다. 두툼한 옷이 바닥과 몸 사이에서 한 겹 완충작용을 한다. 패딩이 충격을 흡수해주는 동안, 한 박자 늦게 멍해진 얼굴로 바닥을 본다. 엉덩이 쪽으로 스며든 싸늘한 감각. 그러나 이 역시 2월이라서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2월이란, 계절이 바뀌는 충격을 부드럽게 완화하는 달. 차가운 날씨와 따뜻한 기운이 한데 뒤섞이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변화를 준비하는. 어쩌면 미끄러지듯 지나가야 비로소 실감하게 되는, 그런 2.

 

패딩은 온기를 가두는 옷이지만, 이상하게도 2월에는 더 허해지는 느낌이다. 두툼한 옷에 몸이 파묻히면, 외부의 찬 공기를 막아줄 것 같지만 정작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도 함께 차단되는 기분이 든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이들의 얼굴은 마스크에 묻혀 있고, 대화는 패딩의 솜 속에서 엉킨다. “춥죠?” 하고 묻는 말이 무의미할 정도로, 서로가 서로에게 먼 2.

 

어쩌면 패딩을 입고 있는 나보다 더 미끄러지기 쉬운 것은 ‘2자체일지도 모른다. 2월은 짧은 달이다. 뒤돌아보면 벌써 사라져버린 것처럼. 1월의 몇몇 다짐은 벌써 퇴색하고, 3월의 길목에서 어딘가 입김으로 떠도는 시간. 잠시 주춤하면서, 나는 조심스럽다. 패딩을 단단히 여미고, 발끝을 들여다보며 한 걸음 한 걸음 디딘다. 2월을 미끄러지지 않고 지나가는 법을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았기에.

 

그렇다고 해서 멈춰 설 수도 없다. 발목을 조심하며 한 걸음씩 내디디는 동안에도, 길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누군가는 살얼음 디디며 새벽 출근길을 나서고, 누군가는 2월의 바람 속에서 어떤 메시지를 기다린다. 고요한 밤에도, 밤의 바깥에서는 강물이 얼어붙고, 나무들은 저들끼리 언 가지를 딱딱 부딪친다. 그러나 결국엔 녹아버릴 것이라는 걸 안다.

 

어느 날, 햇볕이 조금 더 길어진 것을 눈치채고서야 비로소 깨닫게 될 것이다. 한겨울의 끝자락에서 미끄러질 듯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으며, 다음 계절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는 것을. 그렇게 2월이 시작되고 있다. 그러니 오늘도 패딩을 단단히 여미고, 비틀거리는 걸음을 조심스럽게 내디딘다. 미끄러진다고 해도 괜찮다. 2월은 그런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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