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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SNS에서 여기저기 지브리풍 이미지가 보인다. 애니메이션 속 한 장면이 불쑥, 한 사람의 얼굴과 겹쳐 묘한 인상을 남긴다. 오래전 어딘가에서 본 주인공 같기도 하고, 아직 내가 보지 못한 이야기 속 인물 같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하늘을 나는 고물 비행선이나 나무 속에 요괴가 산다는 이야기에 쉽게 마음이 기운다. 말도 안 되는 상상인데도 이상하리만치 익숙하고, 오히려 그런 세계가 더 믿을 만하다고 느껴진다. 단순화된 선과 부드러운 색감이 만든 이 세계는 대체로 조용하고, 깨끗하고, 느리다. 마치 그렇게 살아도 괜찮다고, 속삭이기라도 하듯.
현실은 종종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 매일 겪는 뉴스, 다분한 피로감, 효율적인 슬픔. 그 안에서 산다는 건, 매번 무력해지는 하루를 만나는 일이다. 번잡한 나로부터 벗어난다는 건 필연적으로 무언가를 덜어내는 거다. 무던히 고민했던 생각을 접고, 직감으로 택했던 일. 그러면서도 이래도 되나 싶겠지만, 지브리풍 세계에서는 망설이는 것도 장면이 된다. 전철이 지나고 난 뒤 차단기가 올라가는 풍경, 탐사선 로켓이 끌고 가는 비행운, 벚꽃이 흩날리는 장면, 비 때문에 처마 밑에 자전거를 세우는 장면…. 어떤 장면도 다정하게 살아 있다. 그게 그 세계의 힘이다. 삶이 장면이 되는 힘.
지브리풍 이미지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우리가 놓치고 산 무언가를 발견하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에 여백이 없던 날들, 어린 날의 감각. 그것을 기억해 내는 일. 그렇게 돌아본다면, 삶은 조금 단순해도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단순해야만 가능한 것들이 있다.
삶은 그렇게 그려지고 있다고, 오늘은 잠시 간명해지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