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산불

2025.03.26 14:49

윤성택 조회 수:13

.

산불 때문에 꿈에도 자욱한 그을음이 번진다. 잿더미로 변한 산비탈, 지붕이 주저앉은 집, 나조차 모르는 사이, 내 안 어두운 구석에서 타올랐다. 어쩌면 내가 품고 있던 것들은 불길 앞에서 속절없이 재로 변할, 건조하고 연약한 것들이었는지도. 나무도 집도 사람도, 안타깝게 잃어버릴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렇게 무너지면서 비로소 그 아래 감춰졌던 검댕 가득한 슬픔이, 너무 뜨거워져 스스로조차 외면했던 상처가 드러난다는 걸 알 것도 같다. 이토록 무자비한 불이 아니었다면 결코 볼 수 없었을, 생의 가혹한 내부를.

 

새벽 운동을 하러 산에 갔다가 어디선가 나무 타는 냄새. 순간, 둘러보니 아래 작은 집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늘 보아왔던 장작 태우는 냄새였지만 안도와 동시에 밀려오는 기이한 부끄러움.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닐까 갑자기 살피게 되는 것, 쉽게 불안에 휘둘리는 것. 나라는 사실을 마주하는 일. 무엇 하나 쉽게 지나칠 수 없도록 살피는 게 결국 산이 아니라, 이웃이 아니라 나였다는 게. 왜 이리 마음에 걸리는지.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154 지브리풍으로 산다는 것 2025.04.02 7
» 산불 2025.03.26 13
152 2025.03.19 19
151 전철에서 졸다 눈을 떴을 때 2025.03.12 19
150 삶은 듦인가 2025.03.05 24
149 머리를 길러 뒤로 묶고 나서부터 2025.02.19 31
148 내리는 눈에 눈이 호강하여 오후가 누려진다 2025.02.12 31
147 패딩을 입고 미끄러지기 쉬운 2월 2025.02.06 32
146 일주일 사이 제법 선선하여 2024.09.26 103
145 신호등에 걸려 서 있다 보면 2024.03.13 159
144 글이 읽으러 기회를 만난다 2024.02.22 64
143 인생이 통속으로 취했거늘 2024.02.01 93
142 영화로운 2024.01.26 67
141 보랏지다 2023.12.28 76
140 냉장고 2023.09.07 126
139 poemfire.com 2023.05.10 153
138 시나리오 2023.02.24 106
137 소포 2023.01.18 113
136 받아 두세요 일단 2022.12.21 94
135 태내의 멀미 2022.08.09 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