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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배우는 것들

2004.11.24 22:53

김솔 조회 수:215 추천:3


첫째, 자신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한다. 늘 그 위에 홀로 서 있으면 불안하고 어둡다. 수직으로 선 것들은 늘 쓸쓸하다. 하지만 눕는다고 개선되는 것은 아닌데, 이것은 아마도 척추동물들의 운명인 듯 하다.

둘째, 내 밖의 세상이 부조리라는 걸 알게 된다. 입구와 출구가 늘 같은 미궁이다. 긍정은 없고 도전과 응전의 타협뿐이다. 그래서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역사책은 단 한 권뿐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다만, 바벨탑 시대 이후로 갈라진 언어 때문에 여러 권으로 달리 번역되었을 뿐.

셋째, 희망은 늘 젊다. 인간은 꿈을 저장하기 위한 구조로 진화한다. 한 인간의 모든 기관들이 서로 전혀 다른 형태를 지닌 까닭이 그 명백한 증거이다. 손톱을 보고 꿈을 꾼 자는 네일 아티스트가 되고 무릎을 보고 꿈을 꾼 자는 마라토너가 되는 식이다.

넷째, 열정 없는 희망은 늘 절벽 위에 선다. 날개는 늘 몸속에 숨어 있다. 새들의 날개는 팔이 변해서 된 것이 아니라 몸통이 변해서 된 것이다. 그리고 절벽도 따지고 보면 길이 끊어진 곳에 서는 것이 아니라 내려가거나 올라가는 곳에 서 있을 따름이다.

다섯째, 사람 사는 자리를 만든다. 길과 길 사이마다 생명의 씨앗들을 앉히고 그것들이 서로 욕망과 욕망을 엮어서 한 편의 생을 짜낼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친다. 한 올만이라도 풀리기만 하면 여러 편의 생은 한꺼번에 위험해지는 것이다.

여섯째, 제자리로 돌아와 한 편의 생을 기록하도록 이끈다. 오디세우스에게 귀환이 허락되지 않았던들 출항과 시련은 준비조차 되지 않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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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의 격려를 한발씩 딛고 걸어가겠습니다.
그리고 가끔은 돌아서서
낯선 세상들에 관한 엽서를 적겠습니다.
엽서에 적을 수 없을 만큼,
그리움이 커지거나, 혹은,
외로움이 사라져버리면,
은밀하게 돌아와 술자리를 예약하겠습니다.
멀리서도 형의 시집을 기다립니다.
당신의 삶을 응원합니다!

2004. 11.25 김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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