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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이 내게 말을 할까?

2002.09.03 21:37

윤성택 조회 수:465 추천:3





퍼득, 사무실의 화분들에게 물을 준 지가
오래 되었다는 것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니까 맨 처음 화분이 들어왔을 때
첫물을 준 것은 나였으므로,
사무실의 누구도 이 화분들을 관리하는 사람을
나로 여겼을 것이고,
화분들도 그리 알았을 것입니다.
식물에게도 감각이 있고 감정이 있다고 들었는데
한 아름씩이나 되는 이 화분 다섯 개는
또 얼마나 나를 애타게 기다렸을까요.
족히 보름은 굶었을 그들에게
촉촉하게 물을 뿌려주는데
화분 안에서 물이 스며드는 소리와 흙내음이 번져왔습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바람에 잎새들이
도란도란 거리고 있더군요.

군에 있을 적 두 줄기로 곧게 뻗은 각선미의 플라타너스를
애인 나무로 정하고,
그곳을 지나칠 때마다 안아주었던 생각이 납니다.
그 깜깜한 밤에 보초를 마치고 돌아가던 길
나무를 안아버리고
"내가 어떡했으면 좋겠니?"
라고 물어보았을 때의 막막함이란.

어쩌면 나도 누군가에게
내가 화분을 잊었던 것처럼  
잊혀지고는 있지는 않은지.
사무실  파티션 너머로 손등을 내미는 잎새들,
밤새 어떤 광합성을 꿈꾸었을까.

나는 가만가만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비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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