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화분이 내게 말을 할까?

2002.09.03 21:37

윤성택 조회 수:483 추천:3





퍼득, 사무실의 화분들에게 물을 준 지가
오래 되었다는 것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니까 맨 처음 화분이 들어왔을 때
첫물을 준 것은 나였으므로,
사무실의 누구도 이 화분들을 관리하는 사람을
나로 여겼을 것이고,
화분들도 그리 알았을 것입니다.
식물에게도 감각이 있고 감정이 있다고 들었는데
한 아름씩이나 되는 이 화분 다섯 개는
또 얼마나 나를 애타게 기다렸을까요.
족히 보름은 굶었을 그들에게
촉촉하게 물을 뿌려주는데
화분 안에서 물이 스며드는 소리와 흙내음이 번져왔습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바람에 잎새들이
도란도란 거리고 있더군요.

군에 있을 적 두 줄기로 곧게 뻗은 각선미의 플라타너스를
애인 나무로 정하고,
그곳을 지나칠 때마다 안아주었던 생각이 납니다.
그 깜깜한 밤에 보초를 마치고 돌아가던 길
나무를 안아버리고
"내가 어떡했으면 좋겠니?"
라고 물어보았을 때의 막막함이란.

어쩌면 나도 누군가에게
내가 화분을 잊었던 것처럼  
잊혀지고는 있지는 않은지.
사무실  파티션 너머로 손등을 내미는 잎새들,
밤새 어떤 광합성을 꿈꾸었을까.

나는 가만가만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비기 시작했습니다.


2002. 1.22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47 유리창은 수다중 2003.03.03 489
46 슬리퍼 2003.01.17 420
45 다시 셀마를 추억함 2003.01.04 414
44 겨울비 [2] 2002.12.16 571
43 이게! 2002.11.27 420
42 첫눈 [2] 2002.11.13 552
41 조가튼 가을 2002.11.04 482
40 秋男이 겪는 가을 2002.10.16 449
39 사향 2002.09.27 345
» 화분이 내게 말을 할까? 2002.09.03 483
37 옥상에서 본 그리움 2002.07.23 710
36 집에 가는 길 2002.07.02 647
35 마름을 위하여 2002.06.20 435
34 책상에 앉아 나는 2002.06.10 521
33 너를 기다리다가 2002.06.05 732
32 장마 2002.05.16 609
31 간이역불빛 2002.05.08 462
30 짬뽕 [1] 2002.04.20 485
29 예비군 번지점프를 하다 2002.04.20 417
28 수다, 오너라 인간아 - 영화 "AI"를 보고 2002.04.19 2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