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르는 사이」/ 서지월/ 『현대시학』2003년 10월호
우리 모르는 사이
우리 모르는 사이
인적 끊긴 어느 산길에 버려진
벌레 한 마리
쓸쓸히 숨을 거두고 있을지 몰라
우리 모르는 사이
저홀로 벤치 위에
아무 생각없이 떨어져 누워
하늘 바라보는 나뭇잎 한 장
그도 잊혀진 옛 애인처럼
영원의 잠속으로 빠져들었는지 몰라
우리 모르는 사이
밤이 걸어서 지나가고
내 몸에서 모래처럼 빠져나가는
날숨소리, 그것들도
어디선가 사막을 이뤄
낙타들 줄지어 터벅터벅 걸어가게 하는지
나는 아직 몰라
우리 모르는 사이
중심에서 한 점으로 이탈하는 모든 눈물들
흩어져가는 그들 뒷모습만
아련히 바라볼 뿐
나는 나를 잘 몰라
[감상]
우리 모르는 사이 얼마나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이 시는 그런 상상력으로 벌레나 낙엽, 낙타, 눈물에 사연을 실어놓습니다. 나는 나를 잘 모르는데 그것들이 마치 나를 알아보는 것처럼. 어쩌면 아무도 모르는 사이 우주의 질서가 우리를 관통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라는 말 참 정감이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