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바람막이 - 신정민

2007.06.13 16:16

윤성택 조회 수:1303 추천:141

<바람막이> / 신정민 (2003년 『부산일보』신춘문예로 등단) / 《현대시학》 2007년 6월호


        바람막이*

        기울어진 길을 누가 제일 잘 달리는가
        중심 밖으로 기울어진 여섯 개의 트랙
        선두주자의 속도를 방해하는 바람을 막기 위해
        그는 앞에서 달린다

        어디로 파고들 것인가
        그의 뒤를 바싹 따라 달리는 선수들
        모든 기회는 그의 등 뒤에 있다
        사람들은 그를 바람막이라 부른다
        
        골인지점을 향해
        속도를 내야하는 마지막 한 바퀴
        허벅지의 근육들 팽팽해지는 찰나
        종이 울리면 그는 재빨리 트랙 밖으로 사라진다

        수없이 달렸지만 그에겐 기록이 없다
        주자명단에 이름도 없고
        빗발치는 야유마저도 그의 것이 아니다

        시작과 끝이 한 순간인 놀이를 위해
        자전거는 삼백 개의 부품으로 달리고
        사람은 단 하나의 외로움으로 달린다


*경륜 선수

[감상]
경륜장에 가보지는 않았지만 이 시를 읽으니 외로운 주자에 대한 느낌으로 아련합니다. 경륜은 7명의 선수가 사이클을 타고 순위를 겨루는 경주라는군요. 그렇게 벨로드롬을 여섯 바퀴를 돌게 되는데 이 시에서 말하는 <바람막이>는 네 바퀴 째까지 선수들을 이끌다가 옆으로 빠집니다. 그때부터 본격 경주가 시작되어 속도도 빨라지고 치열한 자리다툼도 일어나지요. 그러다 마지막 바퀴 “땡땡땡땡” 종소리와 함께 폭발적인 마지막 레이스가 펼쳐집니다. 이 시를 읽노라면 사소하게 스쳐가는 풍경을 놓치지 않고 시의 주제로 연결하는 직관과 발상이 신선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행에서 뒷심 좋은 울림이 있는데, 선수도 관객도 아닌 단지 바람막이일 뿐인 한 인생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011 여주인공 - 이희중 2002.02.16 1070 173
1010 단추를 채우면서 - 천양희 2002.02.18 1203 186
1009 폐타이어가 있는 산책길 - 최영숙 2002.02.19 1137 188
1008 귀향 - 박청호 2002.02.20 1187 195
1007 수도관은 한겨울에만 꽃을 피우고 - 심재상 2002.02.21 1133 215
1006 푸른 사막을 보고 오다 - 권현형 2002.02.22 1412 182
1005 겨울 밤에 시쓰기 - 안도현 2002.02.23 1601 181
1004 나무를 생각함 - 최갑수 2002.02.26 1295 177
1003 커브가 아름다운 여자 - 김영남 2002.03.04 1194 200
1002 그가 두고 온 빈집에선 - 이정록 2002.03.05 1219 178
1001 버리고 돌아오다 - 김소연 2002.03.06 1173 184
1000 PC - 이원 2002.03.07 1220 198
999 글자 속에 나를 구겨넣는다 - 이선영 2002.03.11 1151 215
998 젊은 날의 겨울강 - 최동호 2002.03.12 1152 210
997 가시 - 남진우 [1] 2002.03.14 1327 217
996 바람불던 집 - 장승진 2002.03.15 1183 200
995 안개에 꽂은 플러그 - 이수명 2002.03.16 1118 178
994 신림동 마을버스 - 최승철 2002.03.18 1151 171
993 무덤 - 안명옥 2002.03.19 1145 205
992 1984년 - 김소연 2002.03.20 1243 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