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막이> / 신정민 (2003년 『부산일보』신춘문예로 등단) / 《현대시학》 2007년 6월호
바람막이*
기울어진 길을 누가 제일 잘 달리는가
중심 밖으로 기울어진 여섯 개의 트랙
선두주자의 속도를 방해하는 바람을 막기 위해
그는 앞에서 달린다
어디로 파고들 것인가
그의 뒤를 바싹 따라 달리는 선수들
모든 기회는 그의 등 뒤에 있다
사람들은 그를 바람막이라 부른다
골인지점을 향해
속도를 내야하는 마지막 한 바퀴
허벅지의 근육들 팽팽해지는 찰나
종이 울리면 그는 재빨리 트랙 밖으로 사라진다
수없이 달렸지만 그에겐 기록이 없다
주자명단에 이름도 없고
빗발치는 야유마저도 그의 것이 아니다
시작과 끝이 한 순간인 놀이를 위해
자전거는 삼백 개의 부품으로 달리고
사람은 단 하나의 외로움으로 달린다
*경륜 선수
[감상]
경륜장에 가보지는 않았지만 이 시를 읽으니 외로운 주자에 대한 느낌으로 아련합니다. 경륜은 7명의 선수가 사이클을 타고 순위를 겨루는 경주라는군요. 그렇게 벨로드롬을 여섯 바퀴를 돌게 되는데 이 시에서 말하는 <바람막이>는 네 바퀴 째까지 선수들을 이끌다가 옆으로 빠집니다. 그때부터 본격 경주가 시작되어 속도도 빨라지고 치열한 자리다툼도 일어나지요. 그러다 마지막 바퀴 “땡땡땡땡” 종소리와 함께 폭발적인 마지막 레이스가 펼쳐집니다. 이 시를 읽노라면 사소하게 스쳐가는 풍경을 놓치지 않고 시의 주제로 연결하는 직관과 발상이 신선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행에서 뒷심 좋은 울림이 있는데, 선수도 관객도 아닌 단지 바람막이일 뿐인 한 인생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