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 하나> / 차주일 (2003년《현대문학》으로 등단) / 《시현실》 2007년 봄호
精子 하나
레코드바늘 하나 내 몸을 돌고 있네
구심점으로 구심점으로 향하고 있네
소리를 읽힌 몸 꺼풀꺼풀 사라질수록
영혼이 시작된 곳 가까워지네
레코드바늘은 첫울음 시작된 음부 앞에 멈춰있네
내 영혼 저 물속에 있을 것이네
레코드바늘이 정자꼬리질 같은 데시빌과
세레나데 같은 헤르츠를 기억해내고 음부를 여네
나는 태아의 웅크린 모습으로 그곳에 갇히네
지느러미를 태막에 박는 구심점이 보이네
저 지느러미를 흔든 영혼은 내 것이 아니었네
다시 급류를 거슬러 한 청년의 몸에 오르네
연어들이 무질서의 힘으로 모천을 찾아내듯
몸 밖이 보이는 발원지에 이르렀을 때
막 보쌈을 마치고 돌아온 청년의 눈빛이
안구 가득 한 처녀를 풀어 가두고 있었네
처녀는 레코드바늘이 되어 그를 돌기 시작했네
그리고 이내 그의 영혼이 되었네
[감상]
생명 탄생의 경이로움을 <레코드> 기능과 연결해 섬세하게 묘사한 시입니다. 아울러 그 과정이 과학적 근거와 결합되면서 남다른 직관으로 <나>와 아버지의 모습까지 유추해냅니다. 지금은 LP판이 CD에 밀려 사라져갑니다만, 레코드는 파장을 홈에 기록하고 바늘이 그 홈을 지나게 해 정보를 읽어들이는 방식으로 소리를 재생합니다. 이 기본 원리를 시인은 인간 탄생의 비밀로 풀어낸 것이지요. 우리 몸의 DNA는 기억세포들 속에 코드화된 일종의 정보이자 운명이기도 합니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이 오묘한 과정이야말로 <청년의 눈빛이/ 안구 가득 한 처녀를 풀어 가두>는 것인 동시에 하나의 <영혼>으로 합일을 이뤄내는 섭리입니다. < 레코드바늘 하나 내 몸을 돌고> 있다는 상상, 언젠가 음악이 끝나는 정적(죽음) 앞에서 이 시는 과감하게 새로운 <구심점>의 윤회를 들려주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