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 / 김우섭 (2007년 『시인시각』으로 등단) / 제1회《시인시각》 신인상 당선작 中
그 집
가을이 다 가도록 사내는
집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모든 아픈 것들이 집안으로 들어와
꽃밭을 이루고, 꿈을 꾸듯 아득해 하곤 했다
간혹 그 꽃들의 뿌리가
사내의 잠자리까지 찾아 들어와 힘들게
몇 개의 씨앗을 틔우기도 했다
아침마다 신문이 오고, 그것이
세상과 유일한 만남이었으므로
차가운 마루에 앉아서도, 부엌에서 무언가 끓는 소리를
낼 때도, 창 밖 화단이 바람에 수런거릴 때도
손에서 떼지 못하고
어떤 결별의 후일담을 읽는 듯 했다
가끔,
집밖의 일이 궁금할 때면 기타를 꺼내
오래 전 노래를 불렀다
노래가 불러낸 물소리들이 기타를 적시고
세간을 다 적시고, 어딘가 숨어있던
마른 머리카락들이 둥둥 떠올라 그리운 손길처럼
사내의 어깨에 내려앉곤 했다
잊히지 않을 날들이 첨벙첨벙
가을을 질러오다 뒤뜰 감나무에 붉게 걸리면
빛나는 깃을 가진 새들이 찾아와
너무 늦었다는 듯
위로의 말을 전해줄 것만 같았다
가을이 다 가도록 사내의 집에는
모든 아픈 것들이 뿌리를 내리고, 밤이면
산등성이까지 환하게 별이 떠올랐다
세상의 잃어버린 길과 무성한 소문들이
안개처럼 집 주위를 맴돌고
가느다랗게 새어나오는 창밖의 불빛 따라
몇 개의 꽃들이 날아오르는 것을
아무도 보지 못했다 간혹
아픈 관절을 꺾듯 누군가 눈 밟는 소리가
담 너머까지 들려오곤 했다
[감상]
어렵지 않게 읽히는 시이지만 읽다보면 마음 한켠 쓸쓸한 그 무엇이 피어오릅니다. 사내는 왜 집밖에 나오지 않는지, 어떤 절교가 그에게 다녀갔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풍문처럼 그 집을 배경으로 자연의 기웃거림이 있을 뿐. 서정은 진정 가장 외롭게 부는 내면의 바람 같은 걸까요. 아침마다 신문이 오는 건 세상은 아무 일 없듯 잘 돌아가고 있다는 거겠지요. 사내는 <모든 아픈 것들이 뿌리를 내리>는 그 집에서 더없이 고요해지면서 세상으로부터 침전되는 걸 겁니다. 사내와 집이 동일 시 되는 비유도 그렇고, 마지막 외부와 잇닿는 소통을 암시하는 부분도 잔잔하게 읽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