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그네> / 신영배 (2001년《포에지》로 등단) / 《현대시》 2007년 5월호
불타는 그네
그네는 붉다
노을이다
쇠줄은 차갑다
노을이 붉은 얼음상자를 끌고 간다
혀가 얼음에 붙어 따라간다
머리카락이 날리고
그녀의 쇄골이 드러난다
혀가 빠져나간 입 구멍이 그녀의 가슴에 붙어 있다
노을이 파 놓은 그 구멍 속에 부리를 박고
저녁의 이면을 통과하지 못한 새가 죽어 있다
당신이 뒤에서 그네를 민다 천천히
노을 핏빛을 뿌린다 그네는 불에 탄다
활활 그녀의 치마가 하늘로 전진하며 붉게 퍼진다
활활 새의 날개가 가슴에 파고든다
활활 입으로 말을 한다
그녀의 가슴이 괄다 구멍이 커진다 허공에서
그네가 머문다
삐걱거리는 쇳소리로 저녁이 내려올 때
그녀의 등이 탄다 뒤통수가 군밤처럼 벌어진다
당신의 손이 더 세게 그네를 민다 당신의 손도 탄다
그네와 함께 저녁을 젓는 손
당신의 혀는 당신의 목구멍으로 넘어가고 있다
몸에서 뽑아내어 보여주고 싶던 것이
손바닥 위에서 혼자 퍼덕거리는 저녁
그네는 붉다 노을 속으로 날아 들어간
가벼운 소녀다 첨벙 뛰어든 처녀다
화장되는 노파다
붉은 손을 바지주머니에 넣고
입을 다문 당신이 돌아간다
[감상]
붉은색의 강렬한 이미지가 분위기를 압도하는 시입니다. 저녁놀과 그네, 새의 소재들이 유기적으로 관계하며 그로테스크한 내면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때로 시는 이처럼 어떤 서사나 논리 보다 파격적인 구성의 비중으로도 충분히 긴장이 될 수 있습니다. 해질 무렵 선홍빛이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탄탄하게 배열되어 있다고 할까요. 고통이 감지되지 않는 노골적인 신체의 훼손은 잔혹함 너머 기묘함까지 들게 합니다. 마지막 <소녀>, <처녀>, <노파>로 이어지는 점층적 직관과, 단 한 번 쓰이는 직유 <뒤통수가 군밤처럼 벌어진다>가 인상적입니다.
소녀부터 노파가 되도록 성의 노예를 보는 듯
그런 건가? 저녁마다 타는 불타는 그네는 자유롭게 타십시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