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그 집 - 김우섭

2007.06.26 10:38

윤성택 조회 수:1501 추천:147

<그 집> / 김우섭 (2007년 『시인시각』으로 등단) / 제1회《시인시각》 신인상 당선작 中


        그 집

        가을이 다 가도록 사내는
        집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모든 아픈 것들이 집안으로 들어와
        꽃밭을 이루고, 꿈을 꾸듯 아득해 하곤 했다
        간혹 그 꽃들의 뿌리가
        사내의 잠자리까지 찾아 들어와 힘들게
        몇 개의 씨앗을 틔우기도 했다
        아침마다 신문이 오고, 그것이
        세상과 유일한 만남이었으므로
        차가운 마루에 앉아서도, 부엌에서 무언가 끓는 소리를
        낼 때도, 창 밖 화단이 바람에 수런거릴 때도
        손에서 떼지 못하고
        어떤 결별의 후일담을 읽는 듯 했다
        가끔,
        집밖의 일이 궁금할 때면 기타를 꺼내
        오래 전 노래를 불렀다
        노래가 불러낸 물소리들이 기타를 적시고
        세간을 다 적시고, 어딘가 숨어있던
        마른 머리카락들이 둥둥 떠올라 그리운 손길처럼
        사내의 어깨에 내려앉곤 했다
        잊히지 않을 날들이 첨벙첨벙
        가을을 질러오다 뒤뜰 감나무에 붉게 걸리면
        빛나는 깃을 가진 새들이 찾아와
        너무 늦었다는 듯
        위로의 말을 전해줄 것만 같았다
        가을이 다 가도록 사내의 집에는
        모든 아픈 것들이 뿌리를 내리고, 밤이면
        산등성이까지 환하게 별이 떠올랐다
        세상의 잃어버린 길과 무성한 소문들이
        안개처럼 집 주위를 맴돌고
        가느다랗게 새어나오는 창밖의 불빛 따라
        몇 개의 꽃들이 날아오르는 것을
        아무도 보지 못했다 간혹
        아픈 관절을 꺾듯 누군가 눈 밟는 소리가
        담 너머까지 들려오곤 했다


[감상]
어렵지 않게 읽히는 시이지만 읽다보면 마음 한켠 쓸쓸한 그 무엇이 피어오릅니다. 사내는 왜 집밖에 나오지 않는지, 어떤 절교가 그에게 다녀갔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풍문처럼 그 집을 배경으로 자연의 기웃거림이 있을 뿐. 서정은 진정 가장 외롭게 부는 내면의 바람 같은 걸까요. 아침마다 신문이 오는 건 세상은 아무 일 없듯 잘 돌아가고 있다는 거겠지요. 사내는 <모든 아픈 것들이 뿌리를 내리>는 그 집에서 더없이 고요해지면서 세상으로부터 침전되는 걸 겁니다. 사내와 집이 동일 시 되는 비유도 그렇고, 마지막 외부와 잇닿는 소통을 암시하는 부분도 잔잔하게 읽혀옵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011 폐가 - 이동호 [1] 2006.06.16 1566 230
1010 틈 - 신용목 2005.08.02 1902 230
1009 해바라기 공장 - 이기인 [1] 2005.06.23 1715 230
1008 18세 - 박상수 2004.06.03 1590 230
1007 울고 있는 사내 - 장만호 2006.07.31 1879 229
1006 가문동 편지 - 정군칠 2006.02.02 1657 229
1005 나는 사유한다 비전을 접수한다 - 신지혜 [1] 2005.01.20 1393 229
1004 2005신춘문예 당선작 모음 [8] 2005.01.03 2299 229
1003 등뒤의 사랑 - 오인태 2004.03.19 1573 229
1002 단체사진 - 이성목 2002.08.09 1482 229
1001 회전문 - 이수익 2006.12.11 1445 228
1000 빛의 모퉁이에서 - 김소연 2006.02.15 2024 228
999 낙엽 - 이성목 [2] 2005.11.10 2520 228
998 텔레비전 - 서정학 2003.12.30 1290 228
997 1984년 - 김소연 2002.03.20 1243 228
996 초원의 재봉사 - 변삼학 2006.05.16 1445 227
995 바람의 목회 - 천서봉 [4] 2005.12.01 1978 227
994 옥상 - 정병근 [3] 2005.11.03 1847 227
993 희망에 부딪혀 죽다 - 길상호 2004.06.04 1735 227
992 흐르는 물에도 뿌리가 있다 - 김명인 2002.10.15 1359 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