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불법체류자들 - 박후기

2006.10.30 14:24

윤성택 조회 수:1662 추천:225

*<불법체류자들〉/ 박후기/ 《현대문학》 2006년 11월호


        불법체류자들

        소읍 변두리 처가(妻家)
        술 떨어진 밤 술 사러 간다
        날벌레들 싸락눈처럼 몰려드는
        가로등 밑 공중전화
        똑, 똑
        전화카드 돈 떨어지는 소리 들린다
        똑, 똑
        눈 덮인 히말라야 산맥 아래
        고향집 대문 두드리는 소리 들린다
        소를 닮은 그렁그렁한 눈망울에
        축축한 달빛이 일렁인다
        플라타너스 오그라든 나뭇잎
        몰래 귀 기울이다 철커덕
        수화기 놓는 소리에 깜짝 놀라
        바닥으로 떨어진다
        떨켜를 놓친 순간
        나뭇잎도 지상(地上)의 불법체류자가 되나니,
        불법체류자들
        공중전화부스 안에서
        밤늦도록 사각거린다
        

[감상]
어느 늦은 밤 불법체류 노동자가 공중전화 부스에서 고향으로 전화를 겁니다. 이 고즈넉한 풍경을 이 시는 청각의 환치 방법으로 묘사해냅니다. 이 빼어난 이미지는 <전화카드 돈 떨어지는 소리>가 <고향집 두드리는 소리>로, <플라타너스 오그라든 나뭇잎>이 불법 체류자의 목소리인 <사각거림>으로 완성됩니다. 공중전화부스에서 두런두런 알아들을 수 없는 타국의 말이 이리저리 지상을 떠도는 바싹 마른 낙엽소리인 것은 타국에서 살아가는 외로움이 계절처럼 더 깊어졌기 때문은 아닐는지요.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951 꽃피는 만덕 고물상 - 권현형 [2] 2005.10.06 1458 221
950 교통사고 - 김기택 [4] 2005.06.14 1640 221
949 저물어가는 강마을에서 - 문태준 [1] 2005.05.06 1778 221
948 비렁뱅이 하느님 - 정우영 2004.03.16 1147 221
947 블랙박스 - 박해람 2003.12.08 1176 221
946 고가도로 아래 - 김언 2003.07.09 1079 221
945 너 아직 거기 있어? - 김충규 2002.06.15 1336 221
944 내 후생을 기억함 - 이성렬 2006.03.07 1730 220
943 섀도라이팅 - 여태천 2006.02.14 1307 220
942 겨울 저녁의 시 - 박주택 2005.11.12 1982 220
941 예수를 리메이크하다 - 문세정 2005.10.18 1505 220
940 풍림모텔 - 류외향 [1] 2005.08.08 1408 220
939 포레스트검프 - 문석암 [3] 2005.01.27 1331 220
938 그것이 사실일까 - 류수안 2004.10.13 1298 220
937 달의 눈물 - 함민복 [1] 2004.08.24 2187 220
936 후박나무가 있는 저녁 - 이영식 2003.07.29 1130 220
935 낡은 침대 - 박해람 [2] 2006.07.22 1918 219
934 내리막길의 푸른 습기 - 이승원 2006.05.12 1562 219
933 벽 - 유문호 [1] 2006.04.25 1786 219
932 천막 - 김수우 2005.09.24 1404 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