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불법체류자들 - 박후기

2006.10.30 14:24

윤성택 조회 수:1709 추천:225

*<불법체류자들〉/ 박후기/ 《현대문학》 2006년 11월호


        불법체류자들

        소읍 변두리 처가(妻家)
        술 떨어진 밤 술 사러 간다
        날벌레들 싸락눈처럼 몰려드는
        가로등 밑 공중전화
        똑, 똑
        전화카드 돈 떨어지는 소리 들린다
        똑, 똑
        눈 덮인 히말라야 산맥 아래
        고향집 대문 두드리는 소리 들린다
        소를 닮은 그렁그렁한 눈망울에
        축축한 달빛이 일렁인다
        플라타너스 오그라든 나뭇잎
        몰래 귀 기울이다 철커덕
        수화기 놓는 소리에 깜짝 놀라
        바닥으로 떨어진다
        떨켜를 놓친 순간
        나뭇잎도 지상(地上)의 불법체류자가 되나니,
        불법체류자들
        공중전화부스 안에서
        밤늦도록 사각거린다
        

[감상]
어느 늦은 밤 불법체류 노동자가 공중전화 부스에서 고향으로 전화를 겁니다. 이 고즈넉한 풍경을 이 시는 청각의 환치 방법으로 묘사해냅니다. 이 빼어난 이미지는 <전화카드 돈 떨어지는 소리>가 <고향집 두드리는 소리>로, <플라타너스 오그라든 나뭇잎>이 불법 체류자의 목소리인 <사각거림>으로 완성됩니다. 공중전화부스에서 두런두런 알아들을 수 없는 타국의 말이 이리저리 지상을 떠도는 바싹 마른 낙엽소리인 것은 타국에서 살아가는 외로움이 계절처럼 더 깊어졌기 때문은 아닐는지요.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951 해바라기 - 박성우 [2] 2006.12.02 2152 232
950 중간쯤 - 김왕노 2006.12.01 1443 221
949 나이테 통신 - 김애리나 2006.11.29 1304 200
948 점안식 하는 날 - 최명란 [1] 2006.11.28 1222 225
947 도너츠의 하루 - 조인호 [1] 2006.11.27 1359 209
946 용문고시텔 3 - 박순원 [1] 2006.11.17 1407 214
945 푸른 경전 - 김화순 [1] 2006.11.16 1253 209
944 아파트 - 송재학 2006.11.15 1403 198
943 푸른 바닥 - 이관묵 [1] 2006.11.14 1398 206
942 공사 중 - 최규승 [1] 2006.11.08 1439 216
» 불법체류자들 - 박후기 [1] 2006.10.30 1709 225
940 이별 - 안성호 [2] 2006.10.23 2010 224
939 감자를 캐며 - 송은숙 2006.10.16 1724 225
938 밤의 메트로 - 강인한 [1] 2006.10.13 1394 205
937 야적 - 이하석 [1] 2006.10.10 1326 190
936 고추 - 최영철 [1] 2006.09.29 1600 212
935 산후병동 - 김미령 2006.09.27 1447 216
934 행성관측 - 천서봉 2006.09.22 1558 239
933 지는 저녁 - 이은림 [1] 2006.09.19 2164 217
932 킬러 - 안시아 2006.09.17 1671 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