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체류자들〉/ 박후기/ 《현대문학》 2006년 11월호
불법체류자들
소읍 변두리 처가(妻家)
술 떨어진 밤 술 사러 간다
날벌레들 싸락눈처럼 몰려드는
가로등 밑 공중전화
똑, 똑
전화카드 돈 떨어지는 소리 들린다
똑, 똑
눈 덮인 히말라야 산맥 아래
고향집 대문 두드리는 소리 들린다
소를 닮은 그렁그렁한 눈망울에
축축한 달빛이 일렁인다
플라타너스 오그라든 나뭇잎
몰래 귀 기울이다 철커덕
수화기 놓는 소리에 깜짝 놀라
바닥으로 떨어진다
떨켜를 놓친 순간
나뭇잎도 지상(地上)의 불법체류자가 되나니,
불법체류자들
공중전화부스 안에서
밤늦도록 사각거린다
[감상]
어느 늦은 밤 불법체류 노동자가 공중전화 부스에서 고향으로 전화를 겁니다. 이 고즈넉한 풍경을 이 시는 청각의 환치 방법으로 묘사해냅니다. 이 빼어난 이미지는 <전화카드 돈 떨어지는 소리>가 <고향집 두드리는 소리>로, <플라타너스 오그라든 나뭇잎>이 불법 체류자의 목소리인 <사각거림>으로 완성됩니다. 공중전화부스에서 두런두런 알아들을 수 없는 타국의 말이 이리저리 지상을 떠도는 바싹 마른 낙엽소리인 것은 타국에서 살아가는 외로움이 계절처럼 더 깊어졌기 때문은 아닐는지요.
'이미지'... 어쩜 저리도 절묘하게 그려 냈을까...
늘 그렇듯이 다시한번 가슴 깊이 그 의미를 되새기며 갑니다.^^
가끔은 '바람'을 폐부 깊숙히 끌어 안고 놓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감기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