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바닥>/ 이관묵/ 《시를사랑하는사람들》2006년 11월-12월호
푸른 바닥
깊은 산협
외딴집은 보이지 않고
길가 작은 논물 속
송사리 몇 마리 심심하다고
하늘은 구름장 내려놓고 가고
아이는 제 얼굴 벗어 놓고 가고
그것들 휘젓고 놀다 귀찮은 날은
마음에 되도록 삿된 생각 들이지 않으려고
두껍게 얼음장 닫아걸고
웅덩이만한 저녁과
웅덩이만한 쓸쓸함이 함께
먹먹하게 고여 사는
메마른 내 생의 어디쯤
누군가 삽질해 놓은
마음 시리도록
푸르고 깊은 바닥
[감상]
초겨울일까 아니면 초봄일까, 이 시는 그 시린 풍경을 한 폭의 그림처럼 수놓고 있습니다. 정갈스러울 정도로 서정이 잔잔하고 그 깊이도 웅숭깊습니다. 특히 논물 속에 <아이는 제 얼굴 벗어 놓고 가고>는 이 시의 가장 빼어난 부분입니다. 본디 얼굴이란 자신의 정체성으로 흔히 자아를 말하곤 하는데, 이 표현은 그 개념을 훌쩍 뛰어넘음으로써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긴 여운으로 허물어버립니다. 그리하여 첫행 <외딴집은 보이지 않고>가 다시 아이의 집이었다가 지금은 어른이 되어버린 화자의 기억과 결합되면서 시적승화가 이뤄지는 것이겠지요. 누구에게나 이런 <푸르고 깊은 바닥>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늘은 구름장 내려놓고 가고
아이는 제 얼굴 벗어 놓고 가고 이 부분이 너무 좋다고 생각했는데
같은 생각이군요^^*
시 좋습니다
좋은시를 한편 읽으면 괜히 기분이 좋아지기도 합니다
감평 잘 읽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