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중력 스웨터》/ 최규승/ 《시작》 시인선
공사 중
공사로 파헤쳐지는 땅속을 들여다본다
포크레인이 팔을 구부릴 때마다
가을은 점점 깊어만 간다
덤프트럭 가득 담긴 가을이 어디론가 실려 가고
나무들은 잎을 떨군다
나무들은 하늘 한 평쯤은 제 땅으로 갖고 있는지
포크레인 삽질 할 때마다 가지를 흔들어 하늘을 쓸고 있다
한낮, 인부들은 허기를 채우러 가고
포크레인 삽날은 땅속, 바다에 잠긴다
물결이 드나드는
해안의 호를 따라 모래가 하얗게 긁힐 때마다
계절은 점점 깊어만 간다
호의 끝에는 버려진 배가
해안선에 붙들려 삭아간다
돌아온 인부들이 땅속으로 들어가 가을을 솎아낸다
인부들의 몸이 층층이 내려가자
땅속 나무에까지 조금씩 단풍이 든다
내 속으로 덤프트럭 하나 들어와
가을을 쏟아놓고 사라진다
바람이 불어 가벼운 것들이 날리고
몸이 점점 아파온다
[감상]
시에 있어 대상에 밀착 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대상과 화자를 동일화 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대상이 아프면 내가 아프고 내가 활력이 넘치면 대상도 생동감 있게 변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시 쓰기의 유희라면 유희이겠지요. 이 시는 어느 포구 공사장에서의 풍경을 나무 한그루에 포커스를 맞춘 채 그 이미지를 이어나갑니다. <한 평쯤은 제 땅>이라는 것도, 황토흙 붉은 색감을 <땅속 나무에까지 조금씩 단풍이 든다>는 것으로 표현한 것도 기실 대상과 화자의 동일화에서 오는 감각들입니다. 그렇게 온몸으로 느껴볼 수 있는, 아직은 가을입니다.
쉽게 읽혀지지 않는 시보다
자상한 배려가 담긴 감상이
좋아, 더 이곳을 찾게 되고,
추천 버튼을 눌렀던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