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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바닥 - 이관묵

2006.11.14 13:09

윤성택 조회 수:1362 추천:206

<푸른 바닥>/ 이관묵/ 《시를사랑하는사람들》2006년 11월-12월호



        푸른 바닥

        깊은 산협
        외딴집은 보이지 않고
        길가 작은 논물 속

        송사리 몇 마리 심심하다고
        하늘은 구름장 내려놓고 가고
        아이는 제 얼굴 벗어 놓고 가고
        
        그것들 휘젓고 놀다 귀찮은 날은
        마음에 되도록 삿된 생각 들이지 않으려고
        두껍게 얼음장 닫아걸고
        웅덩이만한 저녁과
        웅덩이만한 쓸쓸함이 함께
        먹먹하게 고여 사는

        메마른 내 생의 어디쯤
        누군가 삽질해 놓은
        마음 시리도록
        푸르고 깊은 바닥

        
[감상]
초겨울일까 아니면 초봄일까, 이 시는 그 시린 풍경을 한 폭의 그림처럼 수놓고 있습니다. 정갈스러울 정도로 서정이 잔잔하고 그 깊이도 웅숭깊습니다. 특히 논물 속에 <아이는 제 얼굴 벗어 놓고 가고>는 이 시의 가장 빼어난 부분입니다. 본디 얼굴이란 자신의 정체성으로 흔히 자아를 말하곤 하는데, 이 표현은 그 개념을 훌쩍 뛰어넘음으로써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긴 여운으로 허물어버립니다. 그리하여 첫행 <외딴집은 보이지 않고>가 다시 아이의 집이었다가 지금은 어른이 되어버린 화자의 기억과 결합되면서 시적승화가 이뤄지는 것이겠지요. 누구에게나 이런 <푸르고 깊은 바닥>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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