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총잡이들의 세계사 - 안현미

2006.02.23 17:03

윤성택 조회 수:1612 추천:233

『곰곰』 / 안현미/  《문예중앙 시인선》


  총잡이들의 세계사

  세상은 흙먼지 날리는  무법천지의 서부와도 같다고 아
이가 말했을 때 나는 지붕 위에 올라 앉아 있는 마네킹을
보고 있었다  어쩌면 그건 아이의 염색한 머리 색깔과 마
네킹의 머리 색깔이 같아서였는지도 모른다 피나 콜라다
빛 머리 색깔,  이방인처럼 낯선 아이의 말풍선 속에서는
욜라 짱나 담탱이 같은 해체된 모국어가 쉴 새 없이 튀어
나오고 구겨진 교복엔 기름때가 얼룩져 있다 지구의 반대
편에선  검은 오일 때문에  유혈 전쟁이 한창이지만  검은
오일이  장전된 총을 들고 짙은 선탠이 된  자동차 뒤꽁무
니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아이의 총에선 불꽃이  일지
않는다 선탠이 된 차창이  스르르 열리고 가발 쓴  대머리
아저씨가 골드카드에 사인을 할 때 아이는 서부의 총잡이
존 웨인이 되어 조수석 짙은 화장을 하고 마네킹처럼 앉아
있는 제 또래의 여자아이를 구출하는 상상을 한다 다행히
그건 이 도시에서 무시로 일어나는 일이어서 아이는 제 총
을 가발 쓴 대머리 아저씨의 머리통에 들이밀지 않고 만국
기가 펄럭이는  주유소 앞 바보 같은  허풍선이 거인 풍선
인형만 펄럭펄럭 춤을 추고 있다


[감상]
주유소에 가면 주유아르바이트생이 있지요. 이 시는 그 아이들의 삶과 사회의 부조리 등을 <무법천지의 서부>와 비유해 풀어냅니다. 염색의 <머리 색깔>과 <해체된 모국어>는 어쩌면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방편일지도 모릅니다. 언제 불붙을지 모를 주유 방아쇠를 당기는 불안한 청춘이지만, 원조교제 여자아이의 구출을 상상하듯 마음 속 정의만은 살아 있습니다. 치밀한 묘사와 <거인 풍선>으로 치닫는 의미가 인상적입니다. 전체적으로 톡톡 튀는 사이다 맛 시집이랄까.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951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 고정희 2001.06.21 1636 276
950 너무 아름다운 병 - 함성호 2001.12.19 1634 217
949 킬러 - 안시아 2006.09.17 1633 216
948 이발소 그림 - 최치언 2006.01.18 1632 236
947 따뜻한 마음 - 김행숙 2011.01.17 1630 95
946 봄날 - 신경림 2002.07.11 1629 176
945 상처에 대하여 - 복효근 2001.09.25 1627 206
944 거품인간 - 김언 2005.05.18 1626 235
943 장미의 내부 - 최금진 [5] 2005.04.23 1626 181
942 정류장 - 안시아 2004.11.06 1623 194
941 그 날 - 이성복 2001.05.30 1623 257
940 흉터 속에는 첫 두근거림이 있다 - 정영선 2001.07.12 1620 337
939 바닷가 우체국 - 안도현 2001.06.12 1619 267
938 비 내리는 오후 세 시 - 박제영 [1] 2008.03.12 1618 132
937 꿈 101 - 김점용 2001.07.06 1618 279
936 중독 - 조말선 2001.07.05 1617 288
935 신문지 한 장 위에서 - 송재학 [2] 2008.07.01 1616 128
934 콘트라베이스 - 이윤훈 2005.12.30 1614 232
933 날 저문 골목 - 안숭범 2006.04.07 1612 250
932 빙어 - 주병율 2006.03.21 1612 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