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고래는 울지 않는다 - 마경덕

2004.02.20 16:33

윤성택 조회 수:1609 추천:226

「고래는 울지 않는다」/ 마경덕/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고래는 울지 않는다

        
        연기가 자욱한 돼지곱창집
        삼삼오오 둘러앉은 사내들
        지글지글 석쇠의 곱창처럼 달아올라
        술잔을 부딪친다
        앞니 빠진 김가, 고기 한 점 입에 넣고 우물거리고
        고물상 최가 안주 없이 연신 술잔을 기울인다
        이 술집 저 술집 떠돌다가
        청계천 물살에 떠밀려 온 술고래들
        어느 포경선이 던진 작살에 맞았을까
        쩍쩍 갈라진 등이 보인다
        상처를 감추며 허풍을 떠는 제일부동산 강가  
        아무도 믿지 않는 얘기
        허공으로 뻥뻥 쏘아 올린다
        물가로 밀려난 고래들, 돌아갈 수 없는
        푸른 바다를 끌어 와 무릎에 앉힌다
        새벽이 오면 저 외로운 고래들
        하나 둘, 불빛을 찾아 떠날 것이다
        파도를 헤치고 무사히 섬에 닿을 수 있을지...
        바다엔 안개가 자욱하다
        스크류처럼 씽씽 곱창집 환풍기 돌아간다


[감상]
술고래와 곱창집 환풍기를 이처럼 절묘하게 잇대어 놓았습니다. 이 시가 한눈에 쏙 들어오는 것은 상상력이 주는 신선함 때문이겠다 싶습니다. '새벽이 오면 저 외로운 고래들/ 하나 둘, 불빛을 찾아 떠날 것이다'의 직관에 이르러 가려운 곳 시원스럽게 긁듯 마음이 짠해지는군요. 부디 오래오래 이 시인이 좋은 시를 생산하길 바래봅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931 총잡이들의 세계사 - 안현미 [1] 2006.02.23 1612 233
930 편지에게 쓴다 - 최승철 2001.05.22 1612 261
929 가을, 도서관에서 - 남궁명 [2] 2004.10.14 1609 226
» 고래는 울지 않는다 - 마경덕 [1] 2004.02.20 1609 226
927 김밥 마는 여자 - 장만호 2001.05.15 1609 298
926 보고 싶은 친구에게 - 신해욱 [1] 2007.09.19 1608 106
925 떨어진 사람 - 김언 2005.10.12 1606 189
924 목격자 - 구석본 2006.01.25 1604 194
923 누가 우는가 - 나희덕 [1] 2004.11.23 1604 173
922 나무야 나무야 바람아 - 오규원 2007.02.07 1602 200
921 겨울 밤에 시쓰기 - 안도현 2002.02.23 1601 181
920 움직이는 별 - 박후기 [1] 2003.12.04 1598 238
919 12월의 숲 - 황지우 [3] 2001.11.07 1598 203
918 하늘우체국 - 김수우 2003.09.12 1597 172
917 봄날의 부처님 - 김애리나 [1] 2005.12.13 1595 206
916 사랑한다는 것은 - 최정숙 2003.01.24 1595 187
915 강가의 묘석 - 김병호 2006.01.23 1592 255
914 18세 - 박상수 2004.06.03 1590 230
913 기차 소리 - 심재휘 [1] 2005.06.15 1589 204
912 아코디언 연주자 - 김윤선 2009.05.18 1588 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