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는 울지 않는다」/ 마경덕/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고래는 울지 않는다
연기가 자욱한 돼지곱창집
삼삼오오 둘러앉은 사내들
지글지글 석쇠의 곱창처럼 달아올라
술잔을 부딪친다
앞니 빠진 김가, 고기 한 점 입에 넣고 우물거리고
고물상 최가 안주 없이 연신 술잔을 기울인다
이 술집 저 술집 떠돌다가
청계천 물살에 떠밀려 온 술고래들
어느 포경선이 던진 작살에 맞았을까
쩍쩍 갈라진 등이 보인다
상처를 감추며 허풍을 떠는 제일부동산 강가
아무도 믿지 않는 얘기
허공으로 뻥뻥 쏘아 올린다
물가로 밀려난 고래들, 돌아갈 수 없는
푸른 바다를 끌어 와 무릎에 앉힌다
새벽이 오면 저 외로운 고래들
하나 둘, 불빛을 찾아 떠날 것이다
파도를 헤치고 무사히 섬에 닿을 수 있을지...
바다엔 안개가 자욱하다
스크류처럼 씽씽 곱창집 환풍기 돌아간다
[감상]
술고래와 곱창집 환풍기를 이처럼 절묘하게 잇대어 놓았습니다. 이 시가 한눈에 쏙 들어오는 것은 상상력이 주는 신선함 때문이겠다 싶습니다. '새벽이 오면 저 외로운 고래들/ 하나 둘, 불빛을 찾아 떠날 것이다'의 직관에 이르러 가려운 곳 시원스럽게 긁듯 마음이 짠해지는군요. 부디 오래오래 이 시인이 좋은 시를 생산하길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