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비렁뱅이 하느님 - 정우영

2004.03.16 11:34

윤성택 조회 수:1147 추천:221

「비렁뱅이 하느님」/ 정우영/ 《시와정신》 2004년 봄호



   비렁뱅이 하느님


  어느 밤중이었다. 사람들이 몰래 버린 쓰레기와 패트병과 개똥이 지천
으로 널린 빈터에 갑자기 그가 스며들었다.  그는 쓰레기를 치우고 패트
병을 굴리고 흙으로 개똥을 덮었다. 그런 다음 햇살을 불러들였다. 햇살
은 낮게 떠다니며 빈터를 포근히 감싸주었다. 빈터가 데워지자, 그는 꽃
씨와 풀씨들을 날라왔다. 꽃씨와 풀씨들은 잠이 덜 깬 눈을 비비며 빈터
에 가라앉았다. 그러고는 조용히 뿌리를 내렸다. 때를 맞추어 그는 구름
도 데려와  보슬비를 뿌리게 했다.  빈터에 앙증맞은 새싹들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빈터가 푸른빛으로 일렁이자 그는 슬몃 사라져 버렸다.
  다음날 아침,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부랴부랴 물을 준다, 거름을 준다,
부산스러웠다.  거기에 웬 비렁뱅이가 비칠비칠 걸어오자,  사람들은 더
러워 못 보겠다는 듯 무섭게 비질을 했댔다.



[감상]
나도 어쩌면 당신에게 비질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관심과 무관심 사이 이처럼 꽃들은 피고 봄이 와도 나는 보이는 것에만 집착했던 건 아닌지…. 이 시를 읽으면서 말미에 나를 발견한 듯 싶어 마음이 화끈거렸습니다. 시는 이렇게 낮은 곳에서 의미가 더욱 깊어집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591 편의점·2 - 조동범 [2] 2004.03.18 1390 239
590 철봉은 힘이 세다 - 박후기 [7] 2004.03.17 1446 226
» 비렁뱅이 하느님 - 정우영 2004.03.16 1147 221
588 새에 관한 명상 1 - 한용국 2004.03.15 1158 202
587 비에 갇히다 - 김영섭 2004.03.11 1327 207
586 도개리 복사꽃 - 박이화 2004.03.10 1263 193
585 파도여인숙 - 안시아 2004.03.08 1222 170
584 모종의 날씨 - 김언 2004.03.07 1154 188
583 순간 2 - 이윤학 2004.03.04 1414 217
582 맡겨둔 것이 많다 - 정진규 2004.03.03 1648 223
581 퍼즐 - 홍연옥 [1] 2004.03.02 1733 264
580 육교 - 최을원 [4] 2004.02.28 1756 193
579 센 놈 - 이진수 [3] 2004.02.27 1229 191
578 낯선 금요일 - 문정영 2004.02.26 1168 177
577 밤나무에 묻다 - 박진성 [3] 2004.02.25 1532 206
576 뒤통수 - 하종오 2004.02.21 1157 166
575 고래는 울지 않는다 - 마경덕 [1] 2004.02.20 1609 226
574 봄날 - 김남극 2004.02.19 1521 194
573 아물지 못하는 저녁 - 이병률 [1] 2004.02.18 1268 180
572 사과야 미안하다 - 정일근 [1] 2004.02.17 1307 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