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통수」/ 하종오/ 《문학과경계》 2003년 가을호
뒤통수
내가 쳐다보며 걸으니, 강가
매화들이 일제히 꽃을 피워냈다
꽃향기에 욕심이 동했는지
산들이 스르르 내려와선
매화들을 안고 입고 끼고 올라간 뒤로
내 눈 속에 봄빛이 출렁거렸다
모르는 척 흘러간 뒤에야
머얼리서 뒤척이는 강물에게
내가 눈짓을 하자, 산모롱이마다
강줄기를 꼬며 반짝거렸다 그때
누가 내 뒤통수를 따악 후려쳤다
떠나가서 오지 않는 것들에게 고개 돌렸을 땐
누군가 두 뺨을 어루만져 주더니만,
내가 앞만 보며 가니 해찰하는가
홱 뒤돌아보면 채 꽃 못 피운 어떤 나무들이
내 눈망울을 들여다보고는 스을쩍
꽃망울을 열어 보이는 것이었다
[감상]
고만고만한 풍경묘사이려니 하다가 그만 '누가 내 뒤통수를 따악 후려쳤다'에서 눈이 번쩍 떠집니다. 봄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면 이쯤에서 정신 차리시오, 쯤으로 읽힌다랄까요. 묘사는 일종의 스케치와 같이 그려지는 것이라면 간혹 이런 감각을 이용해 이미지를 전환시켜주는 것도 방법일 것입니다. 지금 봄비가 내립니다. 분명 나뭇가지 속에서는 이 전갈을 받고 답장을 준비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