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개리 복사꽃」/ 박이화/ 《애지》 2004년 봄호
도개리 복사꽃
내 몸 속 어디 숨겨진 복사뼈 있듯
우리 언제 한 몸이었던 적 있었는지
내 입술과 유두
저 연분홍 꽃잎이었던 적 있었는지
거뭇한 북쪽 가지 끝의 저 은밀한 홑꽃
일만 년 전쯤
내 음순이었던 적 있었는지
그리하여
나, 오래 전 하나였던
그 몸을 잊지 못하는 듯
이렇듯 꽃 같이 붉은 생리혈 비쳐오면
내 몸은 무작정 아픕니다
복사꽃 피는 그 사나흘처럼
내 몸도 한 사나흘쯤
밤낮없이 그리움 멍울멍울 쏟으며 아픕니다
[감상]
'나'라는 남성의 대척점에 서 있는 여성이라는 존재, 그리고 그 몸이라는 상징을 다시금 생각해보는 시입니다. 몸은 또 하나의 우주이며 생성과 소멸이 머물다갈 처소입니다. 존재에 대한 거시적 관점이 탁 트인 시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거뭇한 북쪽 가지 끝의 저 은밀한 홑꽃/ 일만 년 전쯤/ 내 음순이었던 적', 이런 직관의 이유로 당신을 만나야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