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종의 날씨」/ 김언/ 《파라21》 2004년 봄호
모종의 날씨
설마, 하고 눈이 왔다
아닌가, 하고 진눈깨비 내렸다
정말이지, 하고 잠시도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함박눈, 나는 먼 길에 서서 독백하는 사람과
자백받는 사람의 표정이 저러할까 싶은 표정으로 같은 하늘과
다른 구름을 지켜보았다 그는 불어왔다,
불어갔다
날씨보다 정치적인 것은 없으므로
그의 말은 믿을 것이 못 된다 일러주는
많은 밤이 거짓말이었다
설마?
하고 눈이 왔다
아니지? 하고 아지랑이 피었다
그가 어떤 모자를 썼던가?
빨간.
그가 어떤 말을 하던가?
푸른.
정말이지,
그는 내일 강연할 증거가 하나도 없다
그는 마치 그림자가 다가오듯이
나를 대한다 언젠가
사람들이 눈물을 그치었다 생각하는
오늘 같은 밤이 또 있을까?
물론.
별은 그가 반짝인다
[감상]
어법이 신선하고 흐름도 재미있는 시입니다. 믿는다는 것, 일기예보만큼 거짓말이 돋보이는 경우가 없을 듯싶군요. 대화가 선문답처럼 이어져 상식을 비트는 위치도 그렇고 ‘별은 그가 반짝인다’라는 모호성 너머 모종(某種)의 의미도 인상적입니다. 존재가치를 증명하려는 숨 막히는 시들 사이에서 만난 읽는 그대로가 시인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