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눈을 감으면 - 김점용

2011.01.22 11:07

윤성택 조회 수:2490 추천:113


《메롱메롱 은주》/  김점용 (1997년 『문학과사회』로 등단) / 《문학과지성시인선》383

          눈을 감으면

        눈을 감으면
        귀 하나가 한없이 커져
        어느 깊은 산속 떡갈나무 이파리
        그 여린 숨소리 듣네

        눈을 감으면
        팔 하나가 길게 뻗어가
        병실에 누운 어린 사람의
        눈물 젖은 볼을 어루만지네

        눈을 감은 채 숨길을 고르면
        어느 순간
        온몸이 투명해지고

        투명해진 몸이 커지고 커져
        세상 모든 것들 위에 천천히 포개지네
        
        나는 없고
        나는 또 있어서
        기쁨인지
        슬픔인지
        나인지
        너인지

        눈 감고 앉은 곳 어디라도
        사무치고
        또 사무쳐오네


[감상]
눈을 감으면 마음이 눈을 뜹니다. 그리고 생각이 지나치는 풍경까지 온 감각이 함께 거닐곤 합니다. 이 시는 이렇게 눈을 감으면 펼쳐지는 떡갈나무 이파리 숨소리(청각), 어린 사람의 젖은 볼(촉감), 온몸의 투명(시각)을 경험하면서 ‘나’의 근원을 모색해갑니다. 그것은 마치 하나의 영혼에서 공동의 영혼으로 ‘천천히 포개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곳에는 ‘나’조차도 불연속(不連續)존재로 생과 사를 넘어서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지금! 이 '사무치'는 감정이야말로 헛것의 이 세상에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유일한 증명이 아닐까 싶습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171 겨울 모스크바 편지 - 김성대 [1] 2011.02.11 1786 128
1170 한순간 - 배영옥 [1] 2011.02.08 1470 123
1169 잠 속의 잠 - 정선 [1] 2011.02.07 1256 119
1168 구름 편력 - 천서봉 [1] 2011.02.01 1136 128
1167 부리와 뿌리 - 김명철 [1] 2011.01.31 1003 109
1166 부레 - 박현솔 2011.01.29 810 108
1165 나무들은 살아남기 위해 잎사귀를 버린다 - 류근 2011.01.28 1255 114
1164 불우를 씻다 - 유정이 2011.01.27 894 112
1163 죽도록 - 이영광 [1] 2011.01.26 1216 111
1162 녹색 감정 식물 - 이제니 2011.01.24 1064 123
» 눈을 감으면 - 김점용 [1] 2011.01.22 2490 113
1160 밤의 편의점 - 권지숙 2011.01.20 1076 99
1159 무가지 - 문정영 2011.01.18 923 103
1158 따뜻한 마음 - 김행숙 2011.01.17 1622 95
1157 빙점 - 하린 2011.01.15 939 81
1156 내 그림자 - 김형미 2011.01.14 1012 84
1155 그믐 - 김왕노 2011.01.13 780 75
1154 브래지어를 풀고 - 김나영 2011.01.12 1085 78
1153 바다의 등 - 차주일 2011.01.11 803 67
1152 와이셔츠 - 손순미 2011.01.10 748 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