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롱메롱 은주》/ 김점용 (1997년 『문학과사회』로 등단) / 《문학과지성시인선》383
눈을 감으면
눈을 감으면
귀 하나가 한없이 커져
어느 깊은 산속 떡갈나무 이파리
그 여린 숨소리 듣네
눈을 감으면
팔 하나가 길게 뻗어가
병실에 누운 어린 사람의
눈물 젖은 볼을 어루만지네
눈을 감은 채 숨길을 고르면
어느 순간
온몸이 투명해지고
투명해진 몸이 커지고 커져
세상 모든 것들 위에 천천히 포개지네
나는 없고
나는 또 있어서
기쁨인지
슬픔인지
나인지
너인지
눈 감고 앉은 곳 어디라도
사무치고
또 사무쳐오네
[감상]
눈을 감으면 마음이 눈을 뜹니다. 그리고 생각이 지나치는 풍경까지 온 감각이 함께 거닐곤 합니다. 이 시는 이렇게 눈을 감으면 펼쳐지는 떡갈나무 이파리 숨소리(청각), 어린 사람의 젖은 볼(촉감), 온몸의 투명(시각)을 경험하면서 ‘나’의 근원을 모색해갑니다. 그것은 마치 하나의 영혼에서 공동의 영혼으로 ‘천천히 포개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곳에는 ‘나’조차도 불연속(不連續)존재로 생과 사를 넘어서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지금! 이 '사무치'는 감정이야말로 헛것의 이 세상에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유일한 증명이 아닐까 싶습니다.
숨어 듣는 바람소리처럼 며칠째 추천하기만 누르다
오늘에서야 늦은 안부 하나 남기고 갑니다.
소설가 박완서님의 별세 소식에 지난 여름 읽다만
그녀의 산문집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게 느껴져서
정녕 이 길, 문학의 길이 걷고 싶은 걸까요?
아무튼 죽어 한이 맺히기 전에
죄 짓는 일이 아니면
하고 싶은 건 하고 살자, 맘 먹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