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궁전의 뜨락을 산책하는 김씨」 / 이덕규 / 『문학동네』2002년 겨울호
구름궁전의 뜨락을 산책하는 김씨
허공에 발판을 놓고 길을 내는 그는
비계공이었다 고층으로 올라갈수록
거대한 산맥을 넘어오는 높새바람 속에서
중심을 잡기 위해 지상과 연결된 안전고리를
수시로 확인해야만 하는,
지상에선 날마다 더 높은 곳을 주문했다
현장사무실 앞 풍향계는
늘 한 곳으로 고정된 채 첨단의 극점을 가리키고 있었고
촉박한 예정공정의 천후표에는
기후와 상관없이 늘 해가 떴다
이윽고, 그는 지상의 통제권이
도달할 수 없는 높이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안전수칙을 무시하고
아슬한 난간 위에 서서 아주 잠깐
고개 들어 훔쳐본
..........................
아 현기증이란 구름궁전의 뜨락을 거닐듯
얼마나 황홀한 산책인가
마침내 그곳에서
중심을 잡기 위해서는 지상과 연결된 모든 안전고리를
남김없이 풀어버려야 한다는 걸
깨닫는 순간,
오랫동안 지상에 묶여 있던 부표 하나가
둥싯 떠올라,
뇌 단층촬영실
모니터 화면에 번져가는 구름 한 점
[감상]
마지막 연 그의 최후가 왜 이리 쓸쓸하게 여겨지는 걸까요. 덧없이 흘러가는 구름에서 김씨의 의식을 읽어서 일까요. 아득히 높은 곳에 올라 바라보는 지상은 뇌단층 촬영 속 어떤 뇌파로 흘러갔는지 이런저런 생각이 오갑니다. 선명한 현실묘사와 말미의 암시로 시가 탄탄한 긴장감을 유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