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구름궁전의 뜨락을 산책하는 김씨 - 이덕규

2003.05.12 11:28

윤성택 조회 수:922 추천:169

「구름궁전의 뜨락을 산책하는 김씨」 / 이덕규 / 『문학동네』2002년 겨울호



        구름궁전의 뜨락을 산책하는 김씨


        허공에 발판을 놓고 길을 내는 그는
        비계공이었다 고층으로 올라갈수록
        거대한 산맥을 넘어오는 높새바람 속에서
        중심을 잡기 위해 지상과 연결된 안전고리를
        수시로 확인해야만 하는,

        지상에선 날마다 더 높은 곳을 주문했다
        현장사무실 앞 풍향계는
        늘 한 곳으로 고정된 채 첨단의 극점을 가리키고 있었고
        촉박한 예정공정의 천후표에는
        기후와 상관없이 늘 해가 떴다
        이윽고, 그는 지상의 통제권이
        도달할 수 없는 높이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안전수칙을 무시하고
        아슬한 난간 위에 서서 아주 잠깐
        고개 들어 훔쳐본
        ..........................
        아 현기증이란 구름궁전의 뜨락을 거닐듯
        얼마나 황홀한 산책인가

        마침내 그곳에서
        중심을 잡기 위해서는 지상과 연결된 모든 안전고리를
        남김없이 풀어버려야 한다는 걸
        깨닫는 순간,
        오랫동안 지상에 묶여 있던 부표 하나가
        둥싯 떠올라,

        뇌 단층촬영실
        모니터 화면에 번져가는 구름 한 점




[감상]
마지막 연 그의 최후가 왜 이리 쓸쓸하게 여겨지는 걸까요. 덧없이 흘러가는 구름에서 김씨의 의식을 읽어서 일까요. 아득히 높은 곳에 올라 바라보는 지상은 뇌단층 촬영 속 어떤 뇌파로 흘러갔는지 이런저런 생각이 오갑니다. 선명한 현실묘사와 말미의 암시로 시가 탄탄한 긴장감을 유지합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431 봄날 - 김기택 2003.05.19 1355 156
430 낯선 길에서 민박에 들다 - 염창권 2003.05.16 962 161
429 철자법 - 문인수 2003.05.15 972 166
428 천막교실 - 김경후 2003.05.13 914 163
» 구름궁전의 뜨락을 산책하는 김씨 - 이덕규 2003.05.12 922 169
426 봄 꽃나무 아래 서면 - 권현형 2003.05.09 1097 178
425 하늘 민박 - 김수복 2003.05.07 1139 166
424 귀 - 장만호 [1] 2003.05.06 1112 209
423 그녀의 염전 - 김선우 2003.05.02 1096 173
422 경비원 박씨는 바다를 순찰중 - 강순 2003.04.30 938 160
421 꽃멀미 - 이문재 2003.04.29 1213 150
420 산딸나무 - 고현정 2003.04.28 1048 167
419 4월의 꽃 - 신달자 2003.04.25 1153 168
418 꽃 속의 음표 - 배한봉 2003.04.23 1049 187
417 누가 내건 것일까 - 장목단 2003.04.22 1018 152
416 늙은 정미소 앞을 지나며 - 안도현 2003.04.21 976 155
415 주름 - 강미정 2003.04.18 1115 173
414 단봉낙타의 사랑 3 - 박완호 2003.04.17 846 163
413 목단꽃 이불 - 손순미 2003.04.15 1004 149
412 더딘 사랑 - 이정록 2003.04.14 1267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