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민박」 / 김수복 / 『서정시학』 2002년 가을호
하늘 민박
옥탑방으로 이사온 후 며칠 동안 밖을 나가지 않았습니다 빗소리가 가슴을 두드리고
가끔 새들이 먼 소식을 던져놓고 건너갑니다 지상으로 내려가는 길은 너무 멀고 계단
은 하늘 가까이로만 뻗어 있습니다 며칠 쉬다보면, 능소화 몇 송이도 질 것이고 구름
속의 폐렴도 화염을 식히며 지나갈 것이고 멀리 서 있는 상처의 노을도 서산을 넘어갈
것입니다 모두 돌려서 내려보내고 홀로 맨발을 씻고 문을 닫고 몇 층의 슬픔을 오르내
리며 개울물 소리도 듣고 나뭇잎 스치는 소리도, 멀리서 울리는 천둥소리도, 쫓기던
소나기 발자국도 듣고 한 며칠 쉬고 싶었습니다
을지로 5가 방장 시장 골목 안 은하장 여관 옥탑방에서 보낸 그 해 겨울의 빈 의자와
쓸쓸한 전화 몇 통, 밖으로 나돌 수 없었던 침묵 속의 미로들, 출구를 봉쇄 당한 슬픔,
자꾸만 내려가고 싶었던 뜨거운 계단, 돌을 던지고 싶었던, 그러나 가 닿지 않았던 막
막한 공중, 창문을 열 수도 없었던, 아니 창문이 없었던, 그림자도 지우고 숨어 있었
던, 아니 뜨거운 그림자를 가슴에 품고 거리를 뛰었던,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할수 없었던, 모른다 모른다라고만 말했던, 그러나, 밤마다 은하수 흐르는 옥상에
서 하늘을 우러러보았던, 은하장 여관 옥탑방.
옥탑방으로 이사온 후 며칠 동안 앓았습니다 빗소리가 가슴을 두드리고 지나가고
새들이 그 동안 잊고 있었던 먼 소식을 던져놓고 하늘을 건너갑니다 밖에는 갓 피어
난 능소화들이 낡은 계단을 타고 올라옵니다
[감상]
비 온 뒤 하늘을 봅니다. 이 구름을 어느 옥탑방에서 보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서간문의 잔잔하고 진솔한 흐름이 창밖 구름만 같습니다. 폐렴에 걸린 화자가 여관 옥탑방에서 격리되어 보냈던 어느 계절의 이야기. 쓸쓸한 듯 마음이 결려오는군요. 마지막 부분,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옥탑방에 능소화가 올라와 건네는 안부에 여운이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