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민들레 - 김상미

2005.04.26 19:06

윤성택 조회 수:2314 추천:217

「민들레」 / 김상미 / 1990년 ≪작가세계≫로 등단  


  민들레

  너에게 꼭 한마디만, 알아듣지 못할 것 뻔히 알면서도, 눈에 어려 노란 꽃,
외로워서 노란, 너에게 꼭 한마디만,  북한산도 북악산도 인왕산도 아닌, 골
목길 처마 밑에 저 혼자 피어 있는 꽃,  다음날 그 다음날 찾아가 보면, 어느
새 제 몸 다 태워 가벼운 흰 재로 날아다니는,  너에게 꼭 한마디만, 나도 그
렇게 일생에 꼭 한번 재 같은 사랑을, 문법도 부호도 필요없는, 세상이 잊은
듯한 사랑을,  태우다 태우다 하얀 재 되어 오래된 첨탑이나 고요한 새 잔등
에  내려앉고 싶어,  온몸 슬픔으로 가득 차 지상에 머물기 힘들 때,  그렇게
천의 밤과 천의 낮  말없이 깨우며 피어나 말없이 지는,  예쁜 노란 별, 어느
날 문득 내가 잃어버린 그리움의 꿀맛 같은, 너에게 꼭 한마디만


[감상]
민들레는 수백 개의 갓털이 달린 낱꽃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시를 읽다보면 쉼표와 쉼표 사이 이러한 갓털의 이미지가 마음에 흩날립니다. 그 한 표현이 어디로 날아가 앉을 지에 따라 제각각 소통이라는 꽃도 피겠지요. 이 시의 포인트는 민들레 씨앗을 ‘재’로 본 직관에 있는데, 활활 타올랐던 사랑이 결코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말없이 깨우며 피어나 말없이 지는’ 존재로 이어집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았던 작은 민들레는 누구의 사랑이었던 것일까, ‘너에게 꼭 한마디만’이 자꾸만 이명(耳鳴)으로 남는군요.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171 문을 닫다 - 문성해 2007.08.28 23685 98
1170 장미 - 박설희 2009.03.09 1737 98
1169 꽃눈이 번져 - 고영민 2009.02.28 1240 99
1168 밤의 편의점 - 권지숙 2011.01.20 1077 99
1167 루드베키아 - 천외자 [1] file 2007.09.07 1162 100
1166 겨울나무 - 이기선 [1] 2008.09.11 1739 100
1165 풀잎처럼 - 박완호 2009.02.14 1270 101
1164 강 건너 불빛 - 이덕규 2009.03.02 1107 101
1163 누군가 눈을 감았다 뜬다 - 황동규 2007.09.14 1405 102
1162 뢴트겐의 정원 - 권오영 [1] 2008.09.16 1200 103
1161 무가지 - 문정영 2011.01.18 924 103
1160 바닷가 저녁빛 - 박형준 2009.03.03 1317 104
1159 주름 - 배영옥 [1] 2007.08.30 1260 105
1158 사랑의 물리학 - 박후기 [1] 2009.11.05 937 105
1157 눈의 여왕 - 진은영 2010.01.13 1042 105
1156 보고 싶은 친구에게 - 신해욱 [1] 2007.09.19 1608 106
1155 사라진 도서관 - 강기원 2010.01.21 1011 106
1154 소주 - 윤진화 2010.01.14 1215 107
1153 빗방울 꽃 - 문신 2009.02.09 1155 108
1152 본인은 죽었으므로 우편물을 받을 수 없습니다 - 김기택 2009.03.13 1231 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