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도에 빠지다》/ 심인숙 (2006년 『전북일보』, 『문학사상』으로 등단) / 《푸른사상 시선》6
벽
금간 벽을 쿵, 두드려본다
문과 문 사이의 벽이
나뭇잎들을 화들짝 틔워올린다
부챗살처럼 펼쳐지는 시간들
눈 먼 뻐꾸기시계가 튀어나온다
식탁에서 지워진 웃음소리가 살아난다
한 토막 가시처럼 발라놓은 햇살
바람을 일으키며 무궁화열차가 지나간다
해피가 컹컹, 짖어댄다
실로폰 소리가 쏟아져 나온다
어스레한 저녁으로
기울어오는 벽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숲속에 지붕을 올려
산새와 별들을 벽 속에 드리운다
연둣빛 나뭇잎들이 찰랑거린다
낙타의 불룩한 등이 걸어 들어온다
사이렌 소리가 가끔 울려퍼진다
문과 문 사이의 벽에
한 사람이 머리를 기댄 채
오래도록 저물어간다
[감상]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벽은 소통의 단절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벽을 두드려 반대편에 그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행위는 벽을 인정하고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입니다. 이렇게 ‘벽’을 인정하니 나뭇잎과 상상의 시계, 사라진 웃음도, 기차도, 들리지 않던 청각도, 아름다움에 대한 시각도 새롭게 다가옵니다. ‘숲속에 지붕을 올려/ 산새와 별들을 벽 속에 드리운다’는 벽에 관한 참 근사한 상상입니다. 그 벽에 머리를 기댄 사람에게 마음을 기대고픈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