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 고영민 / 『문학사상』 6월호 신인당선작(2002)
몰입
어머니 방문 앞에 앉아
침 발라 세운 실 끝
아득하여라.
한 삶, 한 땀
바늘귀에 꿰고 있다.
저 빗나감, 찰나
불러도 대답 없다.
어머니 없다.
한 평생의 서말 구슬 다 꿰고
어머니
방금
바늘 귀,
블랙홀을 통과한다.
환생한다.
[감상]
바늘 귀를 통과하는 것이 한 생애를 통과한다는 직관이 돋보입니다. 절제된 언어가 군더더기 없이 잘 표현되었습니다. 심사평에는 "압축과 긴밀의 상호작용과 어머니를 부르는 주술의 언어"라고 쓰여 있네요. 작년 2월에 10년만에 처음으로 써본 시의 파일이 없어져, 간신히 친구에게 보냈던 메일에서 찾아낸 시라고 하네요. 지금 창밖에는 천둥과 함께 아침 소나기가 내립니다. 10년전 1992년 5월 나는 무엇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