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현대문학 등단 / 김행숙
무인 통신
떼지어 비
내려앉네 종일
종치고 있네 전화번호부
통독하네 지루한 독서
한통속에 사람들
있다, 다 싸잡아버리네
비는 떼지어 오지만
한 줄로 완성되는
一生, 바닥에 닿으면 철철 쏟아낸다
전화번호부
쉽게 읽을 책이 못 되네
한 줄로 끝나는 거야
줄이 끝나는 데서
水葬되네, 행간에서 물옷을 입네
여기서 다 불러모을 거야
다시는 이 강 건너지 말자고
바닥에서 진짜 한통속이 되자고
떼지어 비, 줄지어 내려앉네
너 무섭지? 무서워 죽겠지?
부재 중이어야 했다
슬쩍 끊고 싶은 통화
포개 접으니 전화번호부
심심한 무인도
모두 부재 중이다
[감상]
묘한 알레고리이지요. 비와 전화번호부. 각기 서로 다른 시적 매개물을 하나로 엮는 솜씨가 탁월합니다. "한통속에 사람들/ 있다, 다 싸잡아버리네/ 비는 떼지어 오지만/ 한 줄로 완성되는/ 一生," 이 부분만으로도 고개를 끄덕이게 합니다. 그래서 전화번호부는 부재 중인 명단일지도 몰라 "무인도"처럼 심심한 것인지도. 이 시는 그러한 "낯설음"에 대한 접근, 비와 전화번호부의 본질을 꿰뚫는 듯한 느낌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