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무인 통신 - 김행숙

2001.08.08 14:02

윤성택 조회 수:1425 추천:262

1999년 현대문학 등단 / 김행숙



        무인 통신
                                  

        떼지어 비
        내려앉네 종일
        종치고 있네 전화번호부
        통독하네 지루한 독서
        한통속에 사람들
        있다, 다 싸잡아버리네
        비는 떼지어 오지만
        한 줄로 완성되는
        一生, 바닥에 닿으면 철철 쏟아낸다
        전화번호부
        쉽게 읽을 책이 못 되네
        한 줄로 끝나는 거야
        줄이 끝나는 데서
        水葬되네, 행간에서 물옷을 입네
        여기서 다 불러모을 거야
        다시는 이 강 건너지 말자고
        바닥에서 진짜 한통속이 되자고
        떼지어 비, 줄지어 내려앉네
        너 무섭지? 무서워 죽겠지?


        부재 중이어야 했다
        슬쩍 끊고 싶은 통화
        포개 접으니 전화번호부
        심심한 무인도
        모두 부재 중이다


[감상]
묘한 알레고리이지요. 비와 전화번호부. 각기 서로 다른 시적 매개물을 하나로 엮는 솜씨가 탁월합니다. "한통속에 사람들/ 있다, 다 싸잡아버리네/ 비는 떼지어 오지만/ 한 줄로 완성되는/ 一生," 이 부분만으로도 고개를 끄덕이게 합니다. 그래서 전화번호부는 부재 중인 명단일지도 몰라 "무인도"처럼 심심한 것인지도. 이 시는 그러한 "낯설음"에 대한 접근, 비와 전화번호부의 본질을 꿰뚫는 듯한 느낌이 좋습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11 가을에는 - 최영미 [3] 2001.08.31 2431 235
110 그런 것이 아니다 - 김지혜 [2] 2001.08.30 1535 223
109 세상 먼 바깥쪽에서 - 장영수 2001.08.29 1267 212
108 겨울삽화2 - 천서봉 2001.08.28 1454 191
107 나에게 사랑이란 - 정일근 2001.08.27 1715 218
106 하지 - 조창환 2001.08.24 1259 249
105 쓸쓸한 날에 - 강윤후 2001.08.23 1651 211
104 아카시아 나무 그늘에 오면 - 김혜경 2001.08.22 1369 206
103 대나무 앞에 무릎을 꿇어라 - 김충규 2001.08.21 1180 195
102 선천성 그리움 - 함민복 2001.08.20 1451 207
101 오지 않네, 모든 것들 - 함성호 2001.08.17 1527 216
100 내 마음의 풍차 - 진수미 2001.08.16 1717 241
99 어느 날 문득 - 김규린 2001.08.14 1779 232
98 빗소리 듣는 동안 - 안도현 2001.08.13 1762 235
97 Y를 위하여 - 최승자 2001.08.10 1701 265
96 편지 - 이성복 2001.08.09 2481 271
» 무인 통신 - 김행숙 2001.08.08 1425 262
94 섬 - 조영민 [6] 2001.08.07 2047 256
93 소주 - 최영철 2001.08.06 1556 240
92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2001.08.04 1241 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