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카페 리치에서 - 곽윤석

2001.07.18 12:29

윤성택 조회 수:1570 추천:304

곽윤석 (에릭) / 시나리오작가



        카페 리치에서


        살갗을 파고드는 따가운 햇살이
        친근한 카페에 앉아 잠시
        너를 생각한다

        잠시 너를 생각한다는 건
        말 그대로 대부분의 시간은
        너와 무관한 채 흘러갔다는
        말이다

        네가 받지 않을 것이 분명한
        엽서를 쓰며
        어쩌면 네 말대로 나는 너를 사랑한
        내 감정을 사랑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즐거운 휴일처럼
        네 안에서 무위도식하던 나는 어쩌면
        너를 벗어나 사랑한다는 걸
        두려워했을지도 모른다

        리필 해주는 커피 잔을 움켜쥐고
        나는 몇 시간째 태양이 허락해주는
        나만의 휴일을 태우고 있다

        이대로 돌아가지 않아도 좋다
        돌아가지 않아도 좋다
        돌아가지 않아도…?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엄살 따윈 정말 사절이다



[감상]
원래는 "작은교실"에 올라왔던 시인데, 염치불구하고 이쪽으로 옮겨 놓습니다. 떡을 돌리듯 이런 시는 같이 읽고 싶어집니다. 태양도 날이 선, 이집트로 간 친구가 결국은 자신을 찾으러 갔을 거라고 믿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오체투지하듯 몇 달간 긴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시간, 아마도 친구는 전생의 어느 곳까지 갔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시 곳곳에서 아릿한 감성이 묻어납니다. 그리고 기성시인조차 함부로 쓰기도 힘든 "사랑"이라는 화두를 정면으로 밀어붙이는 용기에 설레이기도 합니다. 나른함이 전염되는 이 시, 내내 그 무늬를 더듬게 하는군요.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91 누가 내건 것일까 - 장목단 2003.04.22 1018 152
90 지하도에서 푸른 은행나무를 보다 - 서안나 2003.06.16 1017 164
89 음풍 - 박이화 2003.12.12 1016 201
88 구름, 한 자리에 있지 못하는 - 이명덕 2003.03.17 1016 179
87 내 그림자 - 김형미 2011.01.14 1014 84
86 자전거포 노인 - 최을원 2003.09.03 1013 166
85 적(跡) - 김신용 2002.09.06 1013 172
84 사라진 도서관 - 강기원 2010.01.21 1011 106
83 나무의 손끝 - 신원철 2003.05.23 1010 167
82 내가 읽기 전엔 하나의 기호였다 - 고현정 2002.12.30 1009 180
81 접열 - 권영준 2003.11.04 1008 186
80 공사장엔 동백나무 숲 - 임 슬 [1] 2002.11.07 1008 167
79 다대포 일몰 - 최영철 2002.06.26 1007 180
78 영자야 6, 수족관 낙지 - 이기와 2002.06.03 1007 182
77 어물전에서 - 고경숙 2002.11.19 1005 180
76 부리와 뿌리 - 김명철 [1] 2011.01.31 1004 109
75 산란2 - 최하연 2003.11.27 1004 178
74 목단꽃 이불 - 손순미 2003.04.15 1004 149
73 못을 박다가 - 신현복 2009.12.07 1003 112
72 무덤생각 - 김용삼 2003.01.23 1000 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