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윤석 (에릭) / 시나리오작가
카페 리치에서
살갗을 파고드는 따가운 햇살이
친근한 카페에 앉아 잠시
너를 생각한다
잠시 너를 생각한다는 건
말 그대로 대부분의 시간은
너와 무관한 채 흘러갔다는
말이다
네가 받지 않을 것이 분명한
엽서를 쓰며
어쩌면 네 말대로 나는 너를 사랑한
내 감정을 사랑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즐거운 휴일처럼
네 안에서 무위도식하던 나는 어쩌면
너를 벗어나 사랑한다는 걸
두려워했을지도 모른다
리필 해주는 커피 잔을 움켜쥐고
나는 몇 시간째 태양이 허락해주는
나만의 휴일을 태우고 있다
이대로 돌아가지 않아도 좋다
돌아가지 않아도 좋다
돌아가지 않아도…?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엄살 따윈 정말 사절이다
[감상]
원래는 "작은교실"에 올라왔던 시인데, 염치불구하고 이쪽으로 옮겨 놓습니다. 떡을 돌리듯 이런 시는 같이 읽고 싶어집니다. 태양도 날이 선, 이집트로 간 친구가 결국은 자신을 찾으러 갔을 거라고 믿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오체투지하듯 몇 달간 긴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시간, 아마도 친구는 전생의 어느 곳까지 갔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시 곳곳에서 아릿한 감성이 묻어납니다. 그리고 기성시인조차 함부로 쓰기도 힘든 "사랑"이라는 화두를 정면으로 밀어붙이는 용기에 설레이기도 합니다. 나른함이 전염되는 이 시, 내내 그 무늬를 더듬게 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