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원』 / 김기택 / 창작과비평사
낡은 의자
묵묵히 주인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늦은 저녁, 의자는 내게 늙은 잔등을 내민다.
나는 곤한 다리와 무거운 엉덩이를
털썩, 그 위에 주저앉힌다.
의자의 관절마다 나직한 비명이
삐걱거리며 새어나온다.
잠시 후 가는 다리에 근육과 심줄이 돋고
의자는 간신히 평온해진다.
여러번 넘어졌지만
한번도 누워본 적이 없는 의자여,
어쩌다 넘어지면, 뒤집어진 거북이처럼
허공에 다리를 쳐들고
어쩔 줄 몰라 가만히 있는 의자여,
걸을 줄도 모르면서 너는
고집스럽게 네 발로 서고 싶어하는구나.
달릴 줄도 모르면서 너는
주인을 태우고 싶어하는구나.
오늘은 네 위에 앉는 것이 불안하다.
내 엉덩이 밑에서 떨고 있는 너의 등뼈가
몹시 힘겹게 느껴진다.
[감상]
모든 사물은 시인의 눈을 통하면, 살아 있는 생명체가 되기도 합니다. 낡은 의자에 투영된 시인의 마음은 안쓰러움과 함께, 의자의 운명을 꿰뚫고 있습니다. 어쩌면 각박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을 의자를 통해, 보여주는 건지도 모릅니다. 늘 언제나 묵묵히 무게를 견뎌내던 내 의자도 어느 때부턴가 삐걱이기 시작한 것은, 시간을 버티고 서 있기에 외로웠기 때문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