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승희/ 1998 현대시 등단, 시음반 <사이렌 사이키>를 김정란 교수와 출반
내 안의 골목길
-痛點11
오늘도 걷는다, 유행가처럼
코가 조금 벗겨진 금강구두를 신고
아주 천천히 길이 당기고 있는 내 몸
그러나 한 걸음도 옮기지 못하네
등 뒤의 길은 내 발목을 끌어당기고
눈 앞의 길은 안개의 스펀지로 나를
흡인하려 하네
나는 곧 보이지 않으리
그리하여 골목에서 길을 잃은 여자
외눈박이 가등 아래, 안개빛
고통이여, 나를 깨어있게 하는 자욱한
고통이여, 더 큰 발소리로 내게로 오라
허물어질 듯한 골목 안의 지나친 고요
네 발소리라도 울려준다면
그것에 귀기울여 나는 즐겁겠네
몸 비비는 나의 침묵을 네 양 팔에 들려주고
시들은 달빛 한 잎 떨어져
내 어두운 옷 위에 나부낀다면
밤의 망토 안에서 너를 껴안으리
지친 나의 눈빛과 달빛 한 잎도 외롭지 않겠네
아, 집시를 닮은 안개의 춤이여
외눈박이 가등이 눈을 뜬
내 안의 골목길이여
[감상]
누구나 다 돌아나온 적이 있는 골목길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생이 어떤 길찾기라면 이 시 속의 골목길은 화자의 내면의 길입니다. 골목 안은 "지나친 고요"가 배를 깔고 숨죽입니다. 그리하여 적막한 그 길에 누군가 와 준다면 "밤의 망토 안에서 너를 껴안으리"의 욕망의 근저와 맞닿아 있습니다. 외로움이 설핏 배여 나오는 시입니다. 저도 대학시절, 자취방 골목에서 나올 때 첫 번째 마주치는 여자와 사랑을 하자라고 치기를 부렸던 적이 있었지요. 물론 나오자마자 동네 수퍼 할머니가 인사를 해왔지만 말이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