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생각」/ 김용삼/ 『작가』2002년 겨울호, <신인상 수상작>
무덤생각
상가(喪家)에 다녀온 후 녹초가 되어
문간방에 누워 있었습니다 네 살 먹은
딸 아이 문밖에 서서 우는데
문을 열어주기가 싫었습니다 아이는
아빠를 서럽게 부르며 문을 두드립니다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다 문득
작은 방이 무덤이라 생각되었습니다
언젠가 마지막 옷으로 갈아입게 되는 날이면
무덤 밖에 서서 지금처럼 아이는
대답 없는 나를 부르며 눈물 뿌리겠지요
그때에는 일어나 달랠 수도 없겠지요
관뚜껑 같은 문을 열어
우는 아이 품 속에 꼭 안아 봅니다
[감상]
자연스러운 설정, 그리고 그 안에 녹아 있는 사랑. 온갖 포즈에 길들여진 시들 중에서 이런 시를 읽게되면 왠지 오늘 하루 착하게 살 것만 같네요. '방'을 '관'으로 바꾸는 것은 시인의 생각이자 상상력의 소산입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생각하기까지의 바탕에는 무엇이 있을까? 사랑하지 않고서 시를 잘 쓸 수 있을까?